[CoverStory] 4년전 퇴출된 '애강'… 똘똘 뭉쳐 부활한 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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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강정현 기자]

"회사를 믿어준 주주들과 고생한 직원들을 위해 다시 상장하기로 했습니다."

3년 전 부도로 퇴출됐다 다음달 11일 코스닥에 재상장하는 난방용 파이프 생산업체 '애강'의 양찬모(44.사진) 대표.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우선 퇴출된 기업이 증시에 재상장하는 것은 50년 증시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한번 망한 회사가 그 조직.인원 등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 어렵다는 게 정설. 증권가에서 '애강스토리'를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이유다.

부도 당시 회사 영업부장이던 양 대표는 경영진마저 포기한 회사를 인수해 직원들과 함께 기적을 일궈냈다. 퇴출될 당시 회사 이름은 '에이콘'. 견실한 중소기업이었다. 1990년 설립돼 아파트용 폴리뷰틸렌(PB) 파이프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고, 다수의 해외 인증을 받을 정도로 기술력도 인정받았다.

위기는 2000년 10월 창업자인 이영찬(당시 61세) 전 대표가 사망하면서 찾아왔다. 회사를 물려받은 아들은 2002년 4월 이모씨에게 팔아넘겼다. 새 경영진은 파이프 사업엔 뜻이 없었다. 대신 컴퓨터.서버 등 IT관련 사업에 무리하게 손을 댔다. 생빚을 쓰다 6개월 만에 700억원이 넘는 대규모 부도를 냈다.

양 대표는 "부도 직후 경영진은 구속되거나 종적을 감췄다. 앞이 캄캄했다" 며 "몇몇 업체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지만 동고동락한 후배들 얼굴을 보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때 직원 100여 명이 양 대표를 찾아왔다. 공채 1기 선배인 만큼 경영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직원 중 최고참이었던 양 대표는 공장장.영업부장 등을 거쳐 누구보다 회사를 잘 알았고, 후배들에게서 신망도 두터웠다.

그는 "우리가 만든 회사, 우리 손으로 일으켜보자고 후배들과 다짐했다"고 말했다. 우선 채권단을 설득했다. "지금은 어렵지만 회사의 기술력을 믿어달라. 반드시 빚을 갚겠다"고 호소했다. 은행들은 부채를 나눠낼 수 있도록 해줬고, 채권 기업들은 이자를 탕감해줬다. 양 대표의 능력을 믿은 협력업체들은 "회사를 살리는 데 쓰라"며 24억여원을 건네기도 했다.

휴일도 없이 '오전 7시 출근, 새벽 2시 퇴근'이 이어졌다. '아는 사업으로 승부한다'며 기존 파이프 사업을 강화했다. 회생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적이라면 직원들의 희생이 이뤄낸 기적입니다. 120명 중 부도 후 회사를 떠난 사람은 한 명뿐입니다. 6개월간 월급도 안 받고 일했습니다. 그런 희생이 회사를 살린 겁니다."

2004년 마침내 흑자로 돌아섰고, 그해 4월 화의를 졸업하고 정상화됐다. 애강은 30~31일 일반 공모를 거쳐 다음달 11일 코스닥에 상장한다. 그는 경영의 기본을 '신뢰와 원칙'에서 찾는다. "서로를 믿으면 능력이 배가 되고, 원칙을 지키면 시장이 알아서 인정해 줍니다."

글=손해용 기자 <hysohn@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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