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아파트 첫 분양 청약대란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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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구미동 18평형 임대아파트에 사는 박모(43.회사원)씨는 29일 아침 일찍 마음을 졸이며 장롱 깊숙히 간직해둔 청약저축 통장을 꺼냈다. 13년 동안 한달도 거르지 않고 매달 10만원씩 꼬박꼬박 저축한 통장이다.

박씨는 이날 회사에 오전만 휴가를 내고 부인의 손을 잡고 성남탄천종합운동장을 찾아 판교신도시 분양아파트 29평형에 청약했다.

박씨는 "현재 붇고 있는 적금으로 분양가를 충당하기에 모자라 적지 않은 돈을 대출받아야하지만 당첨돼 10년 넘게 키워온 내집마련의 꿈이 실현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9일부터 판교신도시 아파트 청약이 시작됐다. 이날 성남시 거주자를 대상으로 한 주택공사의 분양.임대아파트 888가구 청약에 내집마련의 기대에 부푼 무주택 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청약접수 전부터 300여명의 청약자들이 줄을 서 기다리자 주택공사는 청약접수 시작시간(9시 30분)을 8시40분께부터 접수에 들어갔다.

회사에 다니는 김모(32.성남시 이매동)씨는 이날 오전 회사에 외출한다고 나와 아버지와 함께 청약하러 왔다. 부모 등 3가족이 10년 넘게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에서 나와 내집을 마련하겠다는 꿈을 갖고 분양아파트 33평형에 신청했다. 아버지는 이날을 위해 청약저축통장에 20년간 1800만원을 모았다.

김씨는 "분양받으면 결혼 후에도 부모님을 모시고 오랫동안 살 계획"이라며 "판교 분양을 위해 다른 데 통장을 쓰지 않고 아꼈다"고 말했다.

청약접수 창구 직원은 "오늘 신청자격인 1200만원 이상 저축하려면 10년 이상 무주택자여야하기 때문에 청약자들이 40대 이상 중장년층"이라고 말했다.

40대 후반의 부부는 25평형 임대아파트에 신청했다. 남편은 "다들 분양아파트가 낫다고 하지만 돈이 모자란다"며 "10년간 임대를 살면 내집이 되기 때문에 부지런히 저축해 분양전환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대아파트를 신청한 청약자들은 임대료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김모(41.주부)는 "월 임대료가 40만~50만원인데 여기에 관리비 등을 합치면 월 100만원 가까이 '생돈'이 나간다"며 "이게 무슨 서민용 임대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대 청약자들은 보증금을 높이는 대신 월 임대료를 낮춰줘야한다고 주장했다.

주택공사 관계자는 "현재 보증금과 월 임대료는 예정 금액이고 입주 후 보증금과 월 임대료를 최종 결정한다"며 "전환보증금방식을 통해 보증금을 높이는 대신 월 임대료를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버모델하우스에 대한 불만도 여기저기서 들렸다. 한 청약자는 "인터넷으로 봐서 제대로 알겠느냐"며 "평면도.위치 등을 보고 선택했다"고 말했다.

상당수 청약자가 미리 신청평형을 정해 오지 않고 현장에서 주택공사 직원들의 설명을 듣고 팜플렛을 보며 평형을 선택했다.

회사원들은 휴가나 외출로 시간을 내는 등 청약자 대부분이 직접 청약했다. 유통업체에 다닌다는 40대 청약자는 "이렇게 중요한 날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있느냐"며 "외출형식으로 직장 동료와 함께 왔다"고 말했다.

현장접수장은 대학입시접수장에서와 같은 눈치보기도 치열했다. 40대 택시기사는 "분양 25평형을 신청하려다 신청자가 많을 것 같아 평형을 24평형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40대 초반 주부는 "마음이야 33평형을 분양받고 싶지만 당첨 확률도 따져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접수창구 직원들에 따르면 이날 청약자들의 저축총액은 주로 1500만원 이상이라고 귀띔했다. 2000만원 이상은 많지 않았다.

60대 어머니를 대신해 왔다는 이모(30)씨는 "2000만원이 조금 넘는다"며 "잘 하면 내집마련이란 어머니의 평생 소원을 풀어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접수 창구에는 주민등록등본.청약신청서 등 서류가 미비돼 동사무소나 청약저축가입은행을 다녀오는 청약자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주로 입주자모집공고일인 지난 24일 이전에 발급받은 서류여서다. 성남시내 국민은행 지점들엔 청약신청서를 발급받으려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이날 청약자격이 되지 않지만 미리 접수방법과 접수현장 분위기를 익히기 위해 온 사람들도 많았다. 이날 모집가구수가 많지 않아서 접수창구의 혼잡은 덜해 청약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조인스랜드 안장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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