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금지령 소동 정부 의식수준 알 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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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마디로 탁상행정의 표본입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지요. 실효도 없고요."

경기도 양평TPC 골프장 최문휴(71.사진) 회장은 혀를 끌끌 찼다. 그러면서도 고언을 서슴지 않았다.

지난주 '공무원 골프 금지령'을 발표한 국가청렴위원회가 5일 만에 "공무원의 전면 골프 금지령을 내린 적은 없다"며 입장을 누그러뜨린 28일 최 회장은 "골프 금지령은 역대 정권이 틈만 나면 꺼내 드는 단골 메뉴"라며 "공무원들에게 골프를 치지 말라는 것은 반자본주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최 회장은 1991년부터 95년까지 경기도 용인 아시아나 골프장 사장을 지낸 골프계의 원로로 2000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회도서관장(차관급)을 역임했다.

"YS(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도 공무원들에게 골프 금지령을 내렸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어요. 단속이 뜸해지니까 가명으로 골프장을 드나드는 공무원도 제법 있었지요. 직접 차를 몰고 오면 남의 눈에 띌까봐 다른 사람의 승용차에 동승하는 경우가 태반이었어요. 마음만 먹으면 빠져나갈 구멍은 얼마든지 있단 말이에요. 더구나 골프를 금지하면 오히려 유흥업소만 발전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지요."

최 회장은 "이해찬 전 총리가 3.1절에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는 인사들과 골프를 한 것은 분명히 잘못됐다. 그렇다고 해서 골프 금지령을 내리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희한한 풍경"이라며 "전국 200여 개 골프장에 드나드는 모든 사람을 일일이 체크할 수도 없다. 국경일이나 위급한 상황엔 공무원들이 알아서 자제하면 된다"고 말했다.

"해마다 아마추어 골퍼들이 해외에서 써버리는 외화가 천문학적 액수라지요. 외화 유출을 막을 방도를 궁리하는 시간도 모자라는 판에 시대착오적인 골프 금지령 같은 발상으로 나라가 시끄러우니 참 답답합니다. 공무원의 골프장 출입을 막을 게 아니라 퍼블릭 골프장을 많이 지어 보통 사람들이 싼값에 골프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낫지 않을까요."

최 회장은 "YS 정권 때와 지금은 많이 다르다. 골프 인구도 많이 늘어났고, 골프를 무조건 백안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아니다"며 "프로골퍼들은 해외에서 국위 선양을 하고 있는데 정부의 의식 수준은 제자리걸음"이라고 꼬집었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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