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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프리즘]아시아로 눈돌리는 글로벌 사모펀드…덩치는 키우고, 투자는 꼼꼼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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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이용진·김보영의 맥킨지의 빅픽처 

지난해 미국계 사모펀드 베인캐피털이 화장품 브랜드 ‘AHC’로 유명한 국내 화장품업체 카버코리아를 글로벌 기업 유니레버에 매각하며 큰 화제를 불러왔다. 베인캐피털은 4300억원을 투자해 투자 1년여 만에 조 단위의 차익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수익률(IRR)은 400%를 웃돌 것으로 추정돼 한국 인수합병(M&) 시장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만들어냈다. 결과만큼 많은 사람이 의아해했던 것은 베인캐피털이라는 존재다. 국내에는 다소 낯설지만 750억 달러(약 80조원)가 넘는 자산을 굴리고 있는 세계적인 메가펀드다.

운용자산 8년 연속 늘어 사상 최대

베인캐피털의 성공 신화에 힘입어 한국 시장에 대한 글로벌 메가펀드(펀드규모가 50억 달러 이상인 펀드)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베인캐피털 이외에도 KKR·CVC·칼라일 같은 글로벌 메가펀드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국내에선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외국 사모펀드 운용사가 기업을 인수하면 ‘먹튀’ 논란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증시보다 수익률 5~6% 포인트 웃돌아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의 연금을 관리하는 다수의 연기금 회사와 보험사는 유한책임투자자(LP)로서 운용 자산의 일부를 다수의 사모펀드 운용사(GP)들에게 투자하고 있다. 특히 일정 이상의 투자 수익률을 내야 하는 연기금의 경우, 지난 5년간 이런 대체 투자 비중을 지속해서 높여왔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주식 시장이 약세를 보이다 보니 추가적인 투자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사모펀드에 더 많은 돈을 넣은 것이다. 쉽게 말해 우리가 향후 받을 연금의 상당 부분이 다수의 사모펀드에 투자되고 있다는 의미다. 세계적으로 점점 더 많은 규모의 자산이 사모펀드 시장으로 몰리고 있기에 일방적으로 사모펀드를 재단할 것이 아니라 그 생리와 성과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맥킨지 연례 사모투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사모 펀드의 자금 모집 및 운용자산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전년 대비 3.9% 증가한 7500억 달러 이상을 모집했다. 해마다 모집 금액이 늘어나는 추세는 지난 8년간 지속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투자자산별로는 사모펀드 및 사모 채권 투자가 큰 폭으로 성장(각각 11%, 10%)한 반면, 다른 자산군은 하락했다. 부동산 투자는 12%, 천연자원과 인프라 투자는 각각 5%, 4%씩 줄었다. 이러한 자금 유출입 동향에서 두드러진 추세가 나타났다. 바로 기업 M&A 등을 통해 수익을 내는 메가펀드의 급증이다. 지난 2016년 전체 자금 모집에서 7%를 차지했던 메가펀드 비중은 지난해 15%로 치솟았다. 이는 2007년 최고치인 14%를 웃도는 것이다. 한 해 동안 114.2%나 자금이 늘어난 덕분이다. 메가펀드가 거의 존재하지 않다시피 했던 아시아 시장에선 지난해 사모펀드 모집 자금 600억 달러 중 33%에 달하는 200억 달러가 메가펀드로 모집됐다.

메가펀드의 활약은 M&A 시장에서 눈에 띈다. M&A 시장에서 2016년 901억 달러를 모집했던 메가펀드는 2017년 1737억 달러를 모집해 1년 사이 93%가량 성장했다. 규모가 작은 펀드에 비해 운영 성과가 좋고 강한 브랜드 가치를 보유한 덕분이다. 메가 사모펀드들은 일반 주식시장과 비교해도 2008년 이후 5~6%포인트를 웃도는 수익률을 내고 있다.

아시아 지역 투자 앞으로 더 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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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는 자금 모집 규모만 커진 게 아니다. 투자 규모 역시 늘어났다. 사모펀드 전체 투자 규모는 2016년 1조1100억 달러에서 지난해 1조2700억 달러로 14% 늘었다. 특히 한국·중국·일본에서 대형 딜이 진행되면서 아시아 지역의 경우 투자 규모가 1100억 달러를 기록, 전년 대비 96%나 늘었다.

하지만 거래 건수는 2016년에는 전년 대비 2.2%, 지난해에는 8% 줄어 2년 연속 감소했다. 이는 각 딜의 규모가 커진 이유도 있지만, 운용사들이 좀 더 높은 내부수익률을 내기 위해 거래에 더 신중해진 탓이다. 특히 다수의 운용사가 과거 사모펀드 호황기의 뼈아픈 교훈을 잊지 않은 듯하다. 각 운용사는 모집 자금을 투자해야 하는 압력에도 불구하고, 면밀한 투자 프로세스와 가치 평가에서 내부 통제를 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과거보다 기업 인수 가격이 비싸진 점도 걸림돌이다. 지난해 건당 평균 거래액(Deal Size)은 1억58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5%가량 커졌다. 원인을 따져보니 인수기업의 가치평가 배수(EBITDA 배수)가 커진 이유가 컸다. EBITDA 배수는 기업의 시장가치(EV)를 세전영업이익(EBITDA)으로 나눈 값으로, 기업의 적정 가치를 판단하는 데 사용된다. EBITDA 배수의 경우, 2016년 9.2배에서 2017년 10배를 능가해 10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거래 가격이 그만큼 비싸졌다는 뜻이다.

자금은 지속해서 유입됐지만, 운용사 간 경쟁은 심화하고 투자엔 더욱 신중하면서 총 미집행 투자금도 1조7000억~1조8000억 달러로 기록적인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년 대비 9% 증가한 것으로, 9년 연속 증가세다. 돈은 있지만 투자하지 않은 자금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과연 과도한 수준인 걸까? 맥킨지 분석에 따르면, 아직은 과도한 수준으로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런 추세가 지속할 경우 다수의 사모펀드 운용사가 투자집행을 위한 최저 필요 투자이익률을 낮춰야 하거나 거래 기회를 포착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연기금과 공동 투자, 펀드간 통폐합도

이같이 투자 환경이 다소 어려워질지 몰라도, 아시아 사모펀드 시장의 성장세는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 자산의 일부만을 배분하던 글로벌 사모펀드들이 이제는 아시아 전용 펀드를 만들고 있다. 규모가 30억~40억 달러에 이르는 아시아 전용 펀드가 많고, 60억~70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메가 펀드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실제 글로벌 사모펀드 시장에서 아시아 지역의 자산 배분 비중은 5년 전 15% 수준에서 현재 25%에 육박한다. 아시아 시장에서 활동 중인 사모투자 운용사 수도 10년 전 400여개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1700여개로 늘었다.

이용진 시니어 파트너(左), 김보영 김보영 부파트너(右)

이용진 시니어 파트너(左), 김보영 김보영 부파트너(右)

이와 함께 8년 전부터 시작된 호황기를 맞고 있는 사모펀드 시장엔 최근 몇 가지 예전과 다른 역학 구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좀 더 까다롭게 투자 대상을 고르지만, 연기금과 국부펀드는 사모펀드 운용사들과 와 함께 투자금을 늘리는 식의 공동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다수가 아닌 적은 수의 운용사에게 보다 많은 금액의 자본을 배분하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고려 중이다. 여기에 사모펀드 간 통폐합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결국 일부 최상위 플레이어들이 더 큰 몫의 자금 모집을 챙기는 현상이 지속하면서 사모펀드의 대형화가 가속할 전망이다. 맥킨지 한국사무소

이용진 시니어 파트너, 김보영 부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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