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생색에 그친 「서민 부담 경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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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조세 제도란 세금을 받아내기 위한 제도적인 틀이다.
그 틀의 모양과 운용이 바로잡혀 있으면 국민이 형평에 맞게 세금을 내게 되지만 틀 자체가 비틀려 있거나 운용이 잘못되면 세금 부담이 한쪽에 치우쳐 불평을 자아내고 자원 배분을 왜곡시켜 한나라 산업과 경제를 결딴 내게까지 된다.
우리 나라가 70년대 후반에 도입한 종합소득세제만 해도 당연히 과세 대상에 합산돼야 할 이자나 배당 소득 등이 따로 떨어져 분리 과세되고 있고 부가가치세제는 소득이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에게나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이른바 역진성 문제를 덮어두더라도 전체 과세 대상자의 68·9% (87년)가 과세 특례자란 이름으로 적용 대상에서 빠져 있다. 오는 7월1일부터는 특례자의 범위가 확대돼 그 수가 더 늘어나게 돼있다.
이처럼 예외가 많은 적용상의 결함 때문에 국민의 조세 부담은 마치 날이 몇개 빠진 이발기계로 깎은 머리처럼 뚜렷한 불균형의 골이 패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중화학·해외 건설·수출 등 성장 위주의 전략 산업 지원을 위한 광범위한 조세 감면 제도는 이같은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켜 왔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조세 체제 아래서 국민의 세 부담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가는 87년 내국세 수입 10조원 중 근로자들의 월급 봉투에서 떼는 세금이 대종을 이루는 원천 징수분 소득세가 14·4%를 차지하고 소득 무차별적인 부가가치세 비중이 36·5%나 되는 사실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법인세는 16·8%, 사업이나 장사를 해서 돈을 번 사람들이 자진 신고해서 내게 돼 있는 소득세 신고분은 7·2%에 그치고 있다.
특히 원천 징수분은 당국의 징수 결정액의 99%가 꼬박 납부되고 있는데 자진 신고하게 돼 있는 사업 소득분은 74%만이 실제로 걷히고 있어 (86년 징수 실적) 월급장이만 꼬박 세금을 내고 있다는 불만을 사실로써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번 세제 개편 안은 조세 제도의 기본 골격에 대한 논의는 덮어두더라도 그 운용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은 최대한 해소하면서 앞으로 늘어날 재정 수요에 대비, 세금을 더 거둬들이는 방법을 모색해 보자는데 그 취지가 있다.
솔직이 말해 정부측은 이번 개편 안을 마련하면서 근로 소득 계층의 세 부담을 크게 덜어주는 것처럼 생색을 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세 부담이 무거운데다 6년만의 개편인 만큼 물가 상승률 등을 감안하면 미흡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국민 전체로 볼 때는 어쨌든 세금 부담이 앞으로 늘어나지 않을 수 없다.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복지 요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키려면 재정 규모를 늘리지 않을 수 없고 재정을 뒷받침하려면 세금을 더 거두는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주화 요구도 재정 측면에서 보면 비용의 증가를 의미한다. 민주주의적인 절차와 지방 자치제의 실시·운용이 모두 돈이 드는 일이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서방 선진국 국민들이 GNP대비 25% 이상 40% 수준의 높은 조세 부담을 안고 있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정부가 이번 개편안과 함께 앞으로의 조세 부담률이 89년의 17·6%에서 90년에는 18·5%, 91년에는 19·2%, 92년에는 20%로 점차 높아질 것을 예고한 것은 이번 세제 개편의 숨은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말해 준다.
국민으로서도 세금 부담의 증가는 당연히 각오해야 할 일이다. 정부에 대한 목소리는 높이면서 세금을 안내겠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문제는 전체적으로 늘어날 조세 부담을 누구에게 어떻게 안배하느냐는 점이다.
세제 개편 안에 나타난 정부의 복안은 ▲증산층 이하 계층의 소득세 부담을 줄이고 ▲그 대신 기업에 대한 이제까지의 각종 감면 혜택을 줄여 부담을 높이고 ▲자산 소득에 대한 과세를 확대하며 ▲이제까지 과세 대상에서 제외됐던 비영리법인·공공법인 등을 새로 과세 대상에 끌어들이고 ▲그래도 세수 확보에 문제가 생기면 저소득층에도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부가가치세 세율이라도 인상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무역 흑자국으로의 전환, 경제 규모 확대 등 여건의 변화를 배경으로 그 동안 경제 개발 계획 수행 과정에서 무거운 짐을 졌던 근로 소득 계층의 부담을 다소 덜어 조세 감면 등의 혜택을 받아온 기업이나 조세의 사각지대에 가려져 있던 부문에 옮겨 싣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기본 방향은 이렇게 잡아 놓았으면서도 정부가 제시한 개편 안에는 여전히 적지 않은 문제점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부가가치세의 세율 인상을 예고함으로써 서민 대중의 부담을 늘리고 우리 조세체계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간접세의 높은 비율을 오히려 더 끌어 올리려하고 있는 점이다.
현재 우리 나라 조세 수입의 직접세와 간접세 비율은 41대 59로 간접세의 비율이 훨씬 높다.
정부도 이같은 점을 문제점으로 인식, 직·간접세 비율을 50대 50으로 개선해 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도 간접세의 대종을 이루는 부가가치세의 세율을 인상하겠다는 것은 자기 모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면세의 혜택 속에 비대해진 종교 단체 등이 여전히 성역으로 남아 있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정부도 당초 이번 개편 안에 종교 단체 등의 이자·배당소득에 과세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가 종교계의 반발을 고려, 철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동산 양도 차익에는 누진 세율을 새로 적용, 중과세 하겠다면서 주식 매매 차익에는 손대지 않고 있는 것도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원칙이나 형평상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저소득 근로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얄팍한 월급 봉투에서는 빈틈없이 세금을 떼어가면서 주식 매매로 엄청난 재미를 보는 사람들이 세금을 안 낸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성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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