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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를 펼 수 없는 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청소년의 달」 5월에 10대 소년소녀의 자살이 10여건이나 발생했다는 어제 날짜 중앙일보의 보도는 충격적이다.
더구나 자살의 동기가 대부분 학업성적과 관련되었다는 사실은 오늘 우리의 교육이 얼마나 비교육적, 비인간적인가를 말해 주고 있다.
한 고교생은『시험 없는 나라에 살고 싶다』는 유서를 남겼다. 또 한 중학생은『시험도, 학교도 싫다』는 유서를 남겼다. 학교와 시험이 얼마나 지긋지긋했으면 이런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겠는가.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에 청소년의 자살이 많은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지난 30년 사이에 10대의 자살율이 3배나 늘어났고, 매년 3만 명의 10대 자살자가 나오는 일본의 경우도 그 수가 해마다 증가추세에 있다.
그러나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는 부모의 별거 또는 이혼으로 인한 가정의 붕괴나 일에 쫓기는 부모로부터의 소외감등 가정문제가 아니면, 이성관계, 신병비관, 친구들로부터 괴로움을 당하는 개인적인 동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10대의 자살동기는 한결같이 학업성적과 입시, 주위의 과잉기대에 의한 강박관념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히 중-고생의 자살은 본인이나 부모의 기대수준과 성취욕구에 미치지 못하는데 따른 수치감이나 우울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87년도 경제기획원이 발표한「한국사회지표」를 보면 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교육열은 지난 10년 동안 크게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대학 이상의 교육을 원하는 비율은 아들의 경우 77년의 56·3%에서 87년에는 84·5%로, 딸의 경우는 77년의 33·6%에서 87년에는 70·4%로 늘어났다.
이 같은 부모들의 과잉 교육열은 청소년들에게 정신적 부담을 주어자살이라는 극한적 방법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약물복용 등 비정상적 형태로도 나타난다. 대한적십자사가 5월31일 마련한「청소년 약물 남용에 관한 심포지엄」을 보면 우리나라 청소년의 90% 이상이 피로회복제를, 70%이상이 진통제를 복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대부분 학교 성적의 부진과 부모들의 과잉기대가 그들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학업성적이 좋은 것은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 인간의 삶은 물론, 크게는 인류의 역사가 결코 학업성적에 의해 좌우되지 않았다. 오히려 학교시절 성적이 부진했던 사람들이 사회에 나가 더 큰일을 한 예를 우리는 흔히 본다.
따라서 학업성적이 다소 부진하더라도, 교사와 학부모는 그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특기교육 같은 것을 개발, 장려하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더구나 오늘의 교육제도가 크게 개선될 전망이 없는 한 입시와 경쟁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부모들은 사회나 제도를 탓하기 전에 자녀들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자제하고 세상을 밝고 올바르게 살아갈 삶의 지혜와 용기를 불어 넣어 주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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