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99.8%와 민주집중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99.8%.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시황제’로 등극한 엊그제 전국인민대표대회의 개헌안 찬성률이다. 찬성 2958표, 반대 2표, 기권 3표로 사실상 만장일치다. 비밀 보장을 위한 기표소가 없었고, A4 크기의 투표용지에 찬반을 표시한 뒤 접지도 않고 투표하는 식이었다니, 투표자 얼굴이 드러나는 중국 특유의 무기명 투표 방식도 찬성률을 높이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더 근본적인 배경에는 민주집중제라는 사회주의의 오랜 전통이 똬리를 틀고 있다. 민주집중제(democratic centralism)는 토론 과정에선 사상투쟁을 허용하지만 일단 결정이 나오면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조직원리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민주집중제를 ‘공산주의 사회로 가는 징검다리인 프롤레타리아 독재 시기에 일시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중앙집권제’로 표현했다. 이를 실전 조직이론으로 발전시킨 사람이 러시아 혁명투사 레닌이다. 그래도 레닌 당시엔 당 지도부를 상향식 선거로 뽑는 ‘민주’와 함께 상부기관에 대한 하부기관의 복종 같은 ‘집중’ 원칙이 뒤섞여 있었다. 스탈린 시대에 ‘심화학습’이 이뤄졌다. 당의 명령엔 무조건 복종해야 하고, 국론 통일이란 명목으로 소수 의견은 무시됐다. 민주집중제는 트로츠키파 등 반대파 숙청 수단으로 활용됐다. 중국 공산당도 민주집중제를 당의 원칙으로 견지하고 있다. 마오쩌둥은 1954년 헌법에서 민주집중제의 네 가지 원칙으로 ▶소수의 다수에 대한 복종 ▶개인의 집단에 대한 복종 ▶하부의 상부에 대한 복종 ▶당의 중앙 원칙에 대한 복종을 꼽은 바 있다. 북한은 한발 더 나아가 수령론을 만들어 ‘근로인민대중의 최고 뇌수이며 통일단결의 중심’으로 수령을 절대군주처럼 받들었다. 1980~90년대 전대협 등 일부 운동권에서 지도부를 과도하게 영웅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민주집중제에서 비롯된 폐해다.

민주집중제는 사회주의 국가와 당의 조직원리가 됐지만 결국 독재로 이어졌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가장 강력한 경고는 사회주의 내부에서 이미 오래전에 나왔다. 레닌의 맞수였던 여성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민주집중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독재’라고 일갈했다. 트로츠키는 레닌의 민주집중제가 처음엔 당 조직이 당 전체를, 다음엔 중앙위원회가 당 조직을, 마지막엔 독재자가 중앙위원회를 대신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는 사라지고 ‘집중’만 남은 민주집중제라는 유령이 아직도 한반도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서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