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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진영부터 설득해가자(성병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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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헌정사상 새로운 경험인 여소야대의 13대국회가 30일 문을 연다. 그에 앞서 4자니, 5자니로 한동안 우여곡절을 겪었던 대통령과 3김씨간의 최고위 정치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새로운 민주·대화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뜻깊은 행사요 모임이다. 밝은 미래가 열리기를 희망하는 국민의 기대가 여기에 쏠리고 있다. 그러나 그 기대와 희망의 뒷전에는 일말의 불안이 깔려있는 것이 숨길수 없는 사실이다.
국회가 열리면 당장 그동안 억제됐던 욕구가 국회를 통해 분출하려할 것이다. 야당이 내세우는 5개특위같은 것이 바로 분출되는 욕구와 기대를 담고자 하는 눈에 보이는 움직임이다.
그중 지역감정해소·선거부정조사·악법개폐같은 것들은 특위를 구성해 다루는 것이 과연 적절하겠느냐, 또는 효과적이겠느냐 하는 이론의 소지는 있으나 크게 신경쓸일은 못된다.
그러나 광주항쟁이라든지, 5공화국비리조사 같은 것은 성격이 다르다. 정국의 향방을 겉잡을수 없게 만들지도 모를 폭발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광주문제가 그렇다.
지금 여권은 광주사태와 비리조사를 한다고 전직대통령이나 현역군인들이 소환되어 불려다니는 사태를 용납할 수 없다는 내부의 강한 반발에 직면해 있다. 반대로 야권은 광주항쟁의 진상을 조사해 광주시민의 명예를 회복하고 피해보상을 해주는 jt은 물론, 책임자를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현지의 요구를 수렴해야할 처지에 있다.
이러한 양쪽 극단 사이에는 매우 깊은 골이 있다. 이 깊은 골을 어떻게 메우느냐가 오늘날 우리정치의 당면 과제다. 거기에는 대단한 정치력이 요구된다.
과연 오늘날 우리정치가 그런 대단한 정치력을 발휘할수 있을 것인가. 이제까지의 우리정치 행태로는 그런 정치력 발휘를 기대학가 솔직이 말해 어렵다. 바로 정국의 앞날에 불안을 느끼게 되는 이유다.
지금 여권은 이러기도, 저러기도 어려운 곤혹한 처지에 있다. 생각같아서는 광주항쟁에 대해선 민화위의 건의대로 유감표명 정도로 광주시민의 명예회복을 다짐하고 피해보상을 해주는 것으로 넘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정도로는 문제를 잠재울수 없다는 것이 그 건의가 나오기 전부터 확실해져 버렸다. 더구나 국회의석의 과반수 확보 실패로 세야당이 일치해 추진하는 국회의 광주사태진상조사를 봉쇄할 수단조차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마지못해 스스로 진상ㅈ사를 공언하고 나서게 된 것이다.
5공화국시대의 비리에 대해서는 대통령선거과정에서 성역을 두지않고 어느 누구의 비리도 조사해 법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공약을 거듭했다. 그러니 광주사태진상과 비리조사를 피할 수도 없게 됐고, 누구는 조사하고 누구는 조사하지 말자고 하기도 난처하게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내부에선 전직대통령과 현역군인에 대한 조사문제를 둘러싸고 무시하기 어려운 강한 반발이 나오고 있다. 딜레마가 아닐수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야권에도 딜레마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광주사태진상조사를 야권3당이 모두 주장하고 있지만 이문제에 관한한 김대중씨가 특별한 위치에 있는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광주문제를 거론하면서 그는 벌써 여러차례 『책임자들을 용서해야한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나머지 두김씨도 그점은 마찬가지다.
그동안 야당정치권의 광주항쟁에 대한 입장은 진상을 밝혀 광주시민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피해를 보상하여 나라의 민주화를 기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책임자의 처벌이나 정치보복은 「있어서는 안될일」로 제외해놓고 있다.
헌법부칙에 규정해 불처벌·불보복을 보장해 줄수도 있다는 방법론까지 제시한 사람마저 있다. 지금도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아야 한다는 세야당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현지의 분위기나 일부여론은 다르다. 광주항쟁 관계 여러단체의 책임자들은 강력진압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보복이 아닌 응징이므로 사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분명히하고 있다.
막상 진상조사에 들어가 참혹한 당시 상황이 하나하나 보도되어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하면 응징주장·여론재판의 분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가능성은 충분히 예견할수 있다. 과연 그럴 경우에도 야권이 처벌하지 말자는 지금까지의 입장을 고수하면서 격앙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여야 양진영의 사정때문에 이 시점에서 요구되는 정치력은 종래와 같이 여야 이견을 해소해낼수 있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우선 자기 진영부터 설득해낼수 있어야 한다.
여권같으면 광주사태 조사자체에 반발하는 측, 조사대상에도 성역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측등 강력한 반발세력을 우선 설득해 스스로의 운신 폭을 넓히는게 시급하다. 또 야권, 특히 광주에 영향력이 큰 평민당은 적지않은 책임자처벌론자들을 설득해 재량의 폭을 넓혀두는게 중요하다.
이래야 여야대화에서 정치력을 발휘할 여지가 생긴다.
여소야대시대의 여야대화는 과거의 형식적인 대화와는 달리 실질적인 대화, 국정에 책임을 같이지는 대화, 상대당의 입장을 생각해주는 대화여야 한다. 집권측으로서는 아무리 집권을 했다하지만 권력의 반이 이미 야당측에 가버린 현실을 인정하고 야당의 요구를 대폭 받아들이는 폭넓은 수용자세가 필요하다.
야당도 지금까지 처럼 집권측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국정에 대한 책임을 반분하는 동참자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한꺼번에 5개의 특위를 국회에 만들어 나라를 들었다 놓았다하는 것이 안정속의 민주화개혁이란 시대적 과제수행을 위해 과연 사려깊은 일인지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편집국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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