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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노이로제의 과장(이시형<고려병원·신경정신과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말만 들어도 진단이 가능한게 노이로제의 특징이다. 호소하는 내용이 터무니없이 과장되기 때문이다. 『십년동안 잠 한숨 못잤읍니다. 눈 한번 붙였다면 성을 갈겠읍니다.』 시작이 이렇게 나오면 달리 전문의의 진단이 필요치 않다. 이 말대로라면 옛날에 이승을 하직했어야할 사람이다. 누가들어도 엉터리 같은 과장인데도 환자는 진지하다. 그렇게 해야만 자기가받는 고통이 잘 설명되는줄 안다.
하지만 동정은 커녕 핀잔이나 안받으면 다행이다.
가족은 물론 듣는 사람 누구나 웃는다. 사람의 이런 태도가 노리로제 환자를 더욱 괴롭힌다. 자기는 죽을 지경인데 아무도 믿어주질 않으니 딱하다.
화를 내고 서러워 우는 환자도 있다. 가족들의 냉대까지 겹치니 울만하게도 되었다.
사실이지 가족들고 지친다. 십년을 죽겠다고 저 모양이니 지칠 수밖에 없다.
엄살도 적당히 부려야 동정도 가지, 이거야 원 당장 숨넘어갈듯하니 보는 사람도 딱하고 화난다. 아픈게 어디 자기뿌인가. 처음 한두번 속지만 나주엔 무시해 버린다. 그럴수록 환자는 과장에 과장을 더해야 한다. 악순환의 계속이다.
사노라면 불안할때도 있고, 불안하면 가슴이 뛰고 숨도 답답하다. 그러나 노이로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가슴이 답답한게 아니고 아주 터진다. 그냥 답답한게 아니고 당장 질식이라도 할것 같다. 배가 아픈게 아니고 온 창자가 뒤틀린다. 열흘을 가도 밥먹을 생각이 없다. 그런데도 살은 쪄 피둥피둥하다.
어떻게 표현하든 그건 환자의 권리다. 하지만 이렇게 과장하다보면 진짜병이 커진다는 것도 잊어선 안된다. 겁먹고 허둥대면 중추의 위기의식이 발동되어 진짜 증상이 악화되기 때문이다.
위기의식은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거기에 따른 자율신경, 호르몬계의 반응이 뒤따라 걷잡을수 없는 불안의 와중에 휩싸이게 된다. 작은일에 당황하면 그럴수록 불안이 더 커져 엉뚱한 실수도 저지르게 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불안을 더 키우진 말자는 거다. 대인관계를 위해서도 명심할 일이다.
사람은 괴로울때 어떻게 처신하느냐가 인격의 척도가 된다. 괴로워도 밝은 얼굴로 사람을 대하고 맡은바 일을 열심히 해보라. 그럴수 있는 당신을 주위사람들은 존경할 것이다. 당신을 따르고 모여들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에 싸여 있노라면 괴로움도 언젠가는 잊게 된다.
이건 기회다. 모든게 순조로울땐 당신의 사람됨됨이를 보여줄 기회가 없다. 어려울때 지금 뭔가를 보여줘야한다. 설령 당신이 중병을 앓고 있다해도 초연할수 있는 여유를 보여줘야 한다.
영국의 정치가요, 작가인 「체스터필드」경이 중병에 시달려 마차를 천천히 몰수밖에 없었다. 이웃사람들이 『산책나오셨군요』하고 인사하면 그는 짐짓 여유있는 웃음을 머금고, 왈 『장례식 예행연습하는 중이요』라고 응수했다. 이렇게 여유있는 마음에는 불안이나 노이로제가 깃들일 공간이 없다. 불안한 사람들은 한번 음미해볼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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