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는 수련으로 독자적 세계 구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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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술대학이란 제도교육을 받지않고도 미술작가로서의 성장이 가능한가. 아카데미즘의 영향력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통념상 『어렵다』는 대답이 거의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작가적 성장을 위한 필수의 「통과의례」라고 할수 있는 정규미술대학과정을 거치지 않고 독학에 의한 피나는 수련으로 독자적인 자기세계를 구축해냄으로써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고 대답할수 있는 작가들이 적지않다.
한국화의 강행원·박대성, 서양화의 이철수·이인철·안창홍·최병수·김석주, 공예의 이송열등 20∼40대의 젊은 작가들이 그들. 이들은 이유야 어찌됐든 작가로의 입신을 보장하는「미술대학」이란 제도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았을뿐만아니라 『몰개성의 아류만을 확대재생산한다』는 비판을 들어온 이른바 대가에의 도제수업도 받은적이 없다.
사제·학연의 정실이 크게 작용하는 「발표의 장」을 얻기가 지극히 어렵고 특별히 주목해줄 배경도없는 이들의 작가적 성장은 이러한 이중의 난벽을 뚫어낼 수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매우 소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승려생활을 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때 불교종비생으로 동국대승가학과에 적을 두는등 특이한 유전의 경력을 가진 한국화가 강행원은 비미대출신의 대표적인작가.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뒤 화단에 들어와 농촌·도시의 뒷골목이나 변두리·공장지대등 소외된 서민들의 삶터를 소재로한 작품들을 발표, 일찌감치 그 작가적역량을 인정받았다. 지난3월의 개인전을 통해 1천호 내외의 대형작품들을 선보임으로써 신선한 충격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박대성도 대학의 정규미술교육에는 접해본 일이 없는 자생의 작가다. 그는 『한시라도 붓을 쥐지않고서는 내가 설자리는 없다』는 절박한 심경으로 정진을 계속해온 보기드문 노력파로 알려져 있다.
판화부문에서 독자적세계를 펼쳐보이고 있는 이철수도 고교졸업의 학력밖에는 없다. 81년 장판그림을 모아 첫개인전을 열때까지도 그는 화단에 전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작가였다.
그는 지금까지 지방전을 포함해 7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지난해 봄부터는 충북 제원의 박달재 밑으로 생활근거를 옮겨 또한차례 현장작가로서의 변신을 시도하고있다.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판화로 일약 87년 문제작가의 일원으로 발돋움한 최병수도 중학2년을 중퇴, 음식점종업원·공장직공·보일러공·공사장잡부등의 밑바닥인생을 헤쳐왔다.
그밖에 비미대출신 작가로는 수산대학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작가가 된 이인철, 피혁제품회사의 종업원으로 일하며 틈틈이 작품제작에 매달려 87년 동아공예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이송열, 농아화가 김석주, 전문대에서 기계설계를 전공한 후 화가의 길을 택한 김정곤씨등이 있다.
이들은 각자 본인에게 주어진 조건이나 현실상황때문에 대학, 혹은 도제수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숨겨진 이력을 가지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그작품 경향이나 시각이 매우 정직하다는 점이 미덕으로 꼽힌다. <정교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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