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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 정동영 의장 '미묘한 기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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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명숙 국무총리 후보자(왼쪽에서 둘째)가 열린우리당 유승희·조배숙·김희선 의원(왼쪽부터)에게 축하를 받고 있다. 강정현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한명숙 의원을 총리 후보자로 지명하자 열린우리당의 표정은 환해졌다. 총리 인선에 당의 의사가 대폭 반영됐다는 판단에서다. 정동영 의장은 고무된 듯했다. 그는 24일 "대한민국에서 첫 여성 총리가 탄생해 기쁘고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의 측근은 "우리 얘기가 그대로 반영됐다"고 했다.

그러나 정 의장과 청와대 사이엔 미묘한 기류도 흐른다. 정 의장은 노 대통령의 유임 의중에도 불구하고 이해찬 전 총리의 사퇴를 사실상 주도했기 때문이다(14일 청와대 면담에서). 그런 뒤 노 대통령에게 여성 총리를 건의한 사실까지 공개했다(21일 여수에서).

청와대의 속은 편치 않았다고 한다. 총리 인선과정은 가장 강력한 보안이 요구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병완 비서실장이 '한명숙 카드'를 흘린 다음날 김만수 대변인이 다시 '김병준 카드'로 균형을 잡으려 한 것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왔다.

노 대통령이 막판 고심할 무렵인 23일 이미경.조배숙 등 열린우리당 여성 의원들이 나서서 한 의원의 총리 후보 지명을 촉구한 것도 청와대는 압박으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여권 내 역학관계는 노 대통령을 철저히 떠받들고 여당을 효율적으로 견제하던 이해찬 총리 시대와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명숙 총리 시대엔 정동영 의장이 '여권 2인자'로 부상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열린우리당도 적어도 지방선거 때까지는 여권의 중심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병두 의원은 "당이 추천한 인물을 대통령이 수용하고, 총리로 지명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당이 국정 전반을 책임지고 이끌어가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한 후보자가 이 전 총리만큼 참여정부의 정책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부처 간, 당정 간 조정력을 행사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한 후보자가 청와대가 기대하는 것만큼 책임총리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여권의 셈법은=한명숙 카드는 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먼저 야당과 관계 개선의 가능성이 있다. 한나라당이 그의 당적을 문제 삼고 있지만 이 전 총리 때보다는 나을 것이란 전망이다. 여권은 한 후보자의 재야 경력 때문에 민주당.민노당, 시민단체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초대 여성부 장관을 지내 동교동계 인사들과도 가깝다.

하지만 우려도 있다. 국정 장악력 면에서 이 전 총리보다 못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한 의원이 경제.사회.치안 등 내치 장악에 실패하면 대통령이 직접 개입하는 빈도가 잦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 시대의 대통령(외치)-총리(내치) 간 역할분담이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열린우리당의 한 초선 의원은 "분권형 총리는 총리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대통령의 레임덕을 예방할 수 있는 장치인데 이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할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신용호 기자<novae@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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