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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in] 꿈으로 지어올린 문화예술 별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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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발기모임 이후 햇수로 10년 째. 상하수도.전기.통신 등 인프라 구축, 그리고 부분적인 회원 입주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미완의 도시…. 경기도 파주시 통일동산 지구에 들어선 헤이리는 느리지만 탄탄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마을이다. 15만평 남짓한 마을은 '한국형 문화 마을의 실험'으로 주목받아왔다. '촌장'격인 김언호 헤이리위원회 이사장(한길사 대표)이 10년 만에 한숨을 돌리고 조각가 최만린 서울대 명예교수에게 바통을 넘겼다. 옆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를 아는 이웃들이 사는 마을, 아스팔트 대신 친환경 블럭을 깔아 길바닥에 물이 스며들게 배려한 별난 공간 헤이리를 찾았다.

여기, 꿈으로 이뤄진 별난 마을이 있다. 예술마을 헤이리. 경기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통일동산 15만여 평 부지에 자리잡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의 집단거주지다.

헤이리 회원은 370여 명에 이른다. 미술.음악.영화.출판.공연 등 국내 문화계 인사들이 대부분이다. 이중 현재 헤이리에 살고 있는 사람은 80여 명. 이들은 여기서 문화를 생산하고 보여주며 때로는 판매하기도 한다. 헤이리가 특별한 것은 '문화와 예술을 위해' 일부러 마을을 지었기 때문이다. 정부나 특정 단체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문화계 인사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경우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형태다.

헤이리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한 '몽상가'의 꿈에서 시작됐다. 헤이리 위원회 초대 이사장인 김언호 한길사 대표다. 그는 1994년 영국의 유명한 헌책방 마을(헤이온와이)을 방문한 뒤 우리나라에'책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됐다. 몽상가는 뜻밖에도 동지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여러 문화계 인사들이 동참을 원했던 것. '책마을'은 자연스레 '문화마을'로 둘레가 넓어졌다. 97년 발기인 모임을 하고 한국토지공사 소유였던 통일동산 땅을 사들였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외환 위기가 닥쳐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헤이리 사람들의 굳은 뜻에는 변함이 없었다. 2001년 토목공사에 들어갔고 2003년 입주가 시작됐다. 그후 '헤이리 페스티벌' 개최, 작가 스튜디오 공개, 크고 작은 주말의 문화행사 등을 통해 일반인들과 함께 해왔다. 전체 공정률로 따지면 현재 40%쯤 진행됐기 때문에 처음 방문한 사람에겐 아직 황량해 보인다. 그러나 허허벌판이던 땅에서 이런 목적의식 뚜렷한 마을을 일궈냈다는 것은 김대표의 표현처럼 "현실주의자들은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임에 분명하다.

헤이리에는 별난 규칙이 많다. 헤이리 사람들은 주민이 될 때 규칙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해야한다. 일단 주민이 되려면 문화예술 관련 종사자이거나 마을 내에 서점.갤러리.음악감상실 등 관련 시설을 운영해야 한다. 돈이 있다고 다 헤이리의 땅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사회의 인준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배타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문화예술공동체로서 헤이리의 정체성을 지켜가기 위한 규칙"이라는 이상 사무총장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헤이리 주민들은 자신의 땅 가운데 50%만 개인 용도로 쓴다. 나머지 절반은 녹지공간으로 내놓아야 한다. 건축가들의 자문을 얻어 만든 500쪽 분량의 '건축 지침'에 따라야 한다. 3층이 넘는 건물은 지을 수 없다. 산이나 노을을 가리면 안되기 때문이다. 건물의 3분의 2는 문화 공간으로 써야 한다.

건물 외벽에는 페인트칠을 하지 않으며, 간판이나 현수막을 함부로 달 수 없다. 환경디자인위원회가 마을 전체의 미관을 해치지 않는지 규격.디자인.색상을 심의한다. 밤에도 네온사인을 찾아볼 수 없다. 커피전문점.패스트푸드점.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프랜차이즈 외식업체는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생태 도시'를 위해 조성 초기 여러 가지 배려를 한 것도 헤이리 사람들의 고집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대표적인 예가 도로에 아스팔트 포장이 아닌 블럭 포장을 한 것이다. 빗물이 스며들도록 해 다양한 야생식물이 살게 하려는 뜻이다. 시공사와 감리사는 "국내에 유례가 없고 안전성을 보증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헤이리는 이들을 모두 설득했다. 기역자를 거꾸로 놓은 듯한 독특한 모양의 가로등도 생태 보존 차원에서 밝기를 조절한다. 나무와 수풀에 농약을 치지 않는 것도 환경을 위한 작은 실천이다. "농약을 치느니 우리가 벌레에 물리고 뜯기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통일동산이 지어지기 전의 지형은 가급적 건드리지 않았다. 그래서 구불구불하거나 경사진 길이 많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체질적으로 획일화를 싫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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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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