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양성화가 부패 막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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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틀어막는다고 도박이 사라지겠어요? 그래서 미국을 포함해 여러나라가 도박을 합법화하되 철저하게 규제와 감시를 하죠. 로비도 그렇게 해야 부패가 사라집니다."

대 정부 관계 전문가 폴 존슨(사진)은 23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본지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다국적 홍보 컨설팅 회사인 플레시먼힐러드의 공공 분야 총괄 사장을 맡고 있다. 이날 대한상의에서 한국홍보학회 주최로 열린'로비 활동 양성화와 대 정부 커뮤니케이션의 변화'세미나에 강연하러 방한했다. 이 자리에는 기업의 홍보 및 대관(對官) 업무 담당자들과 정부.국회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승희(민주당).정몽준(무소속) 의원 등은 로비스트 양성화 법안을 입법 추진 중이다. 학연.지연을 빌미로 국회나 정부 쪽에 음성적인 접촉을 하는 걸 막자는 취지다. 다음은 존슨 사장과의 일문 일답.

-한국에서는 로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미국도 그렇다. 그래서 '로비(lobby)'보다 '애드보커시(advocacy.변론)'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플레시먼힐러드는 PA(Public Affairs, 공공커뮤니케이션)라는 용어를 쓴다."

-로비스트 양성화가 정치자금 거래의 온상이 된다는 우려가 있다.

"양성화는 투명성을 전제로 한다. 누가 로비스트이고 누구를 만났는지 같은 활동 내역을 낱낱이 공개하도록 한다. 미국은 이런 자료를 언론 같은 감시 세력(watch dog)이 볼 수 있게 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불법.탈법이 발붙이기 힘들다."

-플레시먼힐러드도 미국에 등록된 로비스트가 있는가.

"여럿 있다. 기업들에 언론.정부.시민단체(NGO)와 관련한 홍보 컨설팅을 하면서 로비 활동을 직.간접 지원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인가.

"일종의'교육자'라고나 할까. 의원과 관료들에게 관련 산업의 현황을 세세히 설명한다. 결코 자기가 맡은 고객 기업의 이익만 내세우지 않는다. 자신의 이익과 정반대되는 의견도 알려주고, 왜 그런 주장이 나오는지 설명한다. 로비는 오랜 기간 신뢰를 쌓는 일이다. 미 로비스트 업계는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자기 입장만 대변하는 건 오래가지 못한다는 걸 오랜 경험에서 깨달았다."

-미국의 로비스트는 의회와 정부 쪽만 접촉하나. 한국에선 최근 (윤상림 사건 같은) 법조계 로비가 문제가 됐다.

"법조계 로비는 법으로 막는다. 법의 판단은 모든 압력과 회유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취지다. 어떤 기업도 법조계 로비는 하려 하지 않는다."

-로비스트에 필요한 전문성은.

"담당 산업을 꿰뚫어야 한다. 사람을 만나 설득하는 데는 끈기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대학에 로비 관련 전공이 있는 건 아니다. 조지워싱턴 대학 등 일부 대학의 정치학부에서 정치경영(Politics Management) 같은 로비 관련 과목을 다루기는 한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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