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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라도 해야지 원…’ 돈으로 종이접기하는 남자

중앙일보

입력

리처드 세고비아라는 베네수엘라 청년이 1000%가 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가치가 없어진 볼리비아화 지폐를 재료로 지갑이나 벨트, 핸드백 등을 만들어 팔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왼쪽 사진은 세고비아가 볼리바르화를 접어 만든 핸드백을 들어보이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리처드 세고비아라는 베네수엘라 청년이 1000%가 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가치가 없어진 볼리비아화 지폐를 재료로 지갑이나 벨트, 핸드백 등을 만들어 팔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왼쪽 사진은 세고비아가 볼리바르화를 접어 만든 핸드백을 들어보이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초인플레이션으로 가치가 폭락한 베네수엘라 화폐인 볼리바르화(貨)가 종이접기 재료로 전락했다. 지폐로 종이접기를 하면 훨씬 더 비싸진다는 이유에서다.

AP통신은 26일(현지시간) 콜롬비아에서 쿠쿠타 지역에서 베네수엘라 고액권으로 지폐 공예품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잇는 베네수엘라인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지역에서 종이접기 공예 제품을 만들어 파는 베네수엘라 이민자 리처드 세고비아(24) 부부는 두 달 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쿠쿠타로 이주해 매일 버스정류장 앞에서 좌판을 벌이고 종이접기 공예를 한다. 쿠쿠타에서도 생계가 막막하던 이들은 볼리바르화가 화려하고 다양한 색을 낸다는 점에 착안, 지폐를 접어 벨트ㆍ지갑ㆍ가방을 만들어 개당 10~15달러에 팔기 시작했다. 한때 베네수엘라 최고액권이었던 100볼리바르짜리 지폐 800~1000장으로 핸드백 하나를 만들 수 있었다. 8만~10만볼리바르가 들지만, 미화로는 50센트에도 못 미친다. ‘재료값’ 부담은 없는 셈이다. 화폐로 만든 작품의 가치가 화폐 가치보다 수십 배 높다.

종이접기 공예 재료가 된 베네수엘라 지폐 볼리바르화. [AP=연합뉴스]

종이접기 공예 재료가 된 베네수엘라 지폐 볼리바르화. [AP=연합뉴스]

사상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은 지난해 2784%에 달했다. 올해는 1만3000%까지 치솟을 것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은 전망했다. 가치가 폭락한 볼리바르화는 사실상 거래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세고비아는 “카라카스로 잠시 돌아갔을 때 우린 돈(볼리바르화)을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살 수 없었다”며 이후 볼리바르화로 종이접기 공예를 할 생각을 했다고 했다.

콜롬비아 쿠쿠타의 한 버스 정류장 옆에 차려진 세고비아의 좌판 옆에 볼리바르화 다발이 벽돌더미처럼 쌓여있다. 쌓여있어도 도둑맞지 않는다. [AP=연합뉴스]

콜롬비아 쿠쿠타의 한 버스 정류장 옆에 차려진 세고비아의 좌판 옆에 볼리바르화 다발이 벽돌더미처럼 쌓여있다. 쌓여있어도 도둑맞지 않는다. [AP=연합뉴스]

요즘 그는 잘 팔리는 날이면 20개 정도가 판매된다고 했다. 그는 최근 지역 방송에서 소식을 접한 한 양품점 주인이 대량 구매를 했다고 전했다. 세고비아 부부는 좌판 옆에 볼리바르화를 수북이 쌓아 놓는다. 하지만 그는 “훔쳐 갈 사람이 없어 안심”이라고 AP에 말했다.

세고비아는 고국에 남은 가족에게 여유가 될 때마다 15달러 씩을 보내고 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아침 식사를 해결할 정도는 된다”고 했다. 세고비아가 베네수엘라에서 있었을 당시, 그의 한달 수입은 2.5달러 정도의 수준에 불과했다. 최근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인 4분 1가량이 하루 1끼나 2끼로 버티고 있으며, 이 때문에 지난해 체중이 평균 11㎏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초인플레이션으로 가치가 폭락한 베네수엘라 화폐인 볼리바르화가 종이접기 재료로 전락했다. [AP=연합뉴스]

초인플레이션으로 가치가 폭락한 베네수엘라 화폐인 볼리바르화가 종이접기 재료로 전락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율은 4300%였다. 올해는 1만3000%로 치솟을 것으로 국제통화기금은 전망한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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