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의 입' 9년] 8. 청와대 부대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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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 1971년 4월 대구에서 열린 대통령 선거 유세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오른쪽)과 김종필 공화당 부총재(가운데).

1971년 4월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박정희 대통령은 대전에서 첫 유세를 했는데 경호원들의 과잉 경호가 문제가 됐다. 나는 군중 속에 끼어 그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연단과 청중석이 너무 떨어져 있어 대통령 가까이 다가가려는 청중의 불평이 대단했다. 경호상 일정한 거리는 있어야 한다는 게 경호원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집회요, '표를 달라'는 선거유세다. 대통령과 악수 한 번 해보려고 다가서는 유권자들을 경호원들이 팔꿈치로 슬쩍슬쩍 치며 내치고 있으니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유세 후 사무실에 돌아와 뭐라고 보고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대통령이 직통전화로 불렀다. 본관으로 올라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자세히 보고했다. 대통령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다음날 오후 박종규 경호실장이 내 방으로 왔다. 그는 "차나 한 잔 주시오"라며 태연하게 일상사를 화제삼아 나와 얘기하다 돌아갔다. 눈치를 보니 과잉 경호와 관련해 대통령으로부터 주의를 들은 것이 분명했다.

선거전이 본격화하면서 도쿄에 주재하고 있던 외신기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정부와 언론의 관계는 기형적이었다. 특히 대다수 관료들은 외신을 상대하는 것이 무슨 특수업무나 되는 것처럼 여겨 기피했다.

나는 동양통신사 특파원 경력 덕분에 개인적으로 외신기자들과 비교적 넓은 교유관계를 맺고 있었다. 외신기자들은 서울에 오면 스스럼없이 내게 전화하곤 했다.

이런 관계 때문인지 어느 날 윤주영 대변인이 유세 동안 자기는 대통령을 수행할 테니 서울에 남아 외신기자들을 전담하라고 내게 지시했다. 그리고는 곧 나를 청와대 부대변인에 임명하기로 결정되었다고 일러주었다. 그때까지 없었던 청와대 부대변인 직책이 새로 생긴 것이다. 외신기자들과 관련한 일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전적으로 내 책임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혈혈단신으로 20여 명의 외신기자들을 어떻게 다루라는 말인가. 그들에게는 통사정도 소용없고 협박 공갈도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밥과 술을 사준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궁리궁리하다 얻은 결론은 그들에게 매일 기삿거리를 주자는 것이었다. 즉각 당시 공화당 부총재인 김종필씨를 찾았다. 그는 청구동 자택에서 선거와는 담쌓고 한가로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내일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해주십시오"라고 요구했다. 김씨는 깜짝 놀라며 사양했다. 나는 재차 요구했고, 그는 거듭 사양했다. 결국 김씨는 "청와대 지시인가"라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 이미 대통령 각하의 승낙을 받은 것이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는 얼굴색이 환하게 풀리면서 기자회견에 동의했다. 김씨는 공화당 부총재라는 직함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3선 개헌에 반대했다는 과거지사 때문에 여당 주류에서 밀려나 선거전에서 아무런 역할을 맡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때 김씨에게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김성진 전 청와대 대변인·문공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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