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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伊 총선…어른거리는 파시즘 부활의 그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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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종차별, 반파시스트 시위대가 밀라노에서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반인종차별, 반파시스트 시위대가 밀라노에서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2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곳곳에서 극우 성향 집회와 반(反)파시스트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다음 달 4일 상원 315석, 하원 630석을 뽑는 총선을 앞두고 이탈리아에선 난민과 안전 문제가 가장 큰 화두로 떠올랐다. 이를 둘러싸고 제2차 세계대전 때 국가주의를 앞세워 파시스트당을 만든 베니토 무솔리니를 지지하는 이들과 "파시즘 유령의 부활은 안 된다"고 비판하는 측이 격렬하게 대립 중이다.

극우와 손잡은 베를루스코니의 우파연합, 지지율 1위 #개별 정당선 오성운동 1위지만 모두 과반 어려울 듯 #난민이 최대 화두…유럽 올 최대 변수로 伊 선거 주목 #82세 부패 정치인 베를루스코니가 연정 판 짜는 역설 #

 이런 담론 속에 총선은 중도 우파냐, 중도 좌파냐, 아니면 좌우 정당을 모두 비판하는 반 기득권 정당이냐의 세 가지 구도로 치러지고 있다. 그 중심에 거부이자 총리를 세 차례나 지낸 82세의 정치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있다. 중도우파 전진 이탈리아(FI) 소속인 그는 탈세 유죄 판결을 받아 총리를 맡을 수 없다. 하지만 '킹 메이커'를 거쳐 정계 실세가 되기 위해 총선 판에 뛰어들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AP=연합뉴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AP=연합뉴스]

 파시스트 노선에 가장 충실한 정당은 반난민을 내세우는 동맹당이다. 마테오 살비니 대표가 24일 밀라노에서 주도한 시위에 경찰 추산 1만5000~2만 명이 참여했다. 살비니 대표는 군중 앞에서 "이탈리아 퍼스트"(이탈리아 우선주의)를 외쳤다.

 지난 4년 동안 이탈리아에는 리비아를 필두로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 난민 60만명이 쏟아져 들어왔다. 2013년 총선 때 4%를 얻은 동맹당은 현재 지지율 13%로 올라섰다. 매년 불법 체류 난민 10만명을 돌려보내자고 주장한다.

 베를루스코니는 총선을 앞두고 동맹당과 손을 잡았다. 여기에 파시스트당에 뿌리를 둔 이탈리아 형제당(지지율 5%)을 더했다. 베를루스코니의 FI와 이들 정당이 꾸린 우파연합은 선거를 앞두고 마지막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37%를 기록했다. 가장 많은 득표를 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단독정부를 구성하려면 지지율 40%가량을 확보해야 한다.

 동맹당의 살비니 대표는 연합 내 정당 지지율에서 동맹당이 1위를 차지하면 자신이 총리로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익명을 요구한 이탈리아 신문의 한 에디터는 "극우가 연정을 좌지우지 못 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은 베를루스코니"라고 텔레그래프에 말했다.

반난민을 내세우는 극우 동맹당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 [AP=연합뉴스]

반난민을 내세우는 극우 동맹당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 [AP=연합뉴스]

 집권 중도좌파 민주당(PD)은 마테오 렌치 전 총리가 전면에 나섰지만 고전 중이다. 24일 밀라노에선 뉴 파시스트 운동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진압 경찰과 충돌했다. 파올로 젠틸로니 총리와 렌치 전 총리는 “파시즘으로 돌아가선 안 된다"는 슬로건 아래에서 함께 참여했다. 하지만 지지율이 23%에 그쳐 단독정부 구성은 요원하다.

 오성운동은 이들 좌ㆍ우 정치권을 부패 세력으로 비난하며 차별화를 꾀한다. 31살 루이지 디 마이오가 총리 후보로, 이탈리아 정당 중 가장 젊다. 오성운동은 개별 정당 중에선 가장 높은 지지율(28%)을 보이고 있다. 환경 문제 등에서 극좌 경향이지만 난민 정책에선 강경해 포퓰리즘 정당으로 꼽힌다. 2013년 총선에서 25%를 얻어 창당 4년 만에 제1 야당이 된데 이어 세를 확산 중이다.

오성운동의 총리 후보인 루이지 디 마이오 [EPA=연합뉴스]

오성운동의 총리 후보인 루이지 디 마이오 [EPA=연합뉴스]

 세 세력 누구도 단독정부를 구성하지 못하는 '헝 의회'(hung parliament)가 현실화하면 이탈리아 정계는 불안기에 접어들게 된다. 노회한 부패 정치인 베를루스코니가 선거 결과를 보고 연정 판을 짤 것이란 관측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베를루스코니는 디 마이오를 '국정 경험이 없는 애송이'라고 부르며 그를 저지하기 위해 정계에 복귀했다고 말하곤 했다. 오성운동과의 연정은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FI와 PD 두 기성 정당이 대연정을 할 가능성도 있다. 베를루스코니는 이럴 경우 극우 동맹당 등을 내쳐야 한다.

 오성운동 측은 다른 정치 세력과 연대하지 않겠다는 당초 입장에서 선회했다. 우파연합이 단독정부를 꾸리지 못하면 단일 정당으로서 1등을 확보할 자신들이 중심이 돼 정책 연대를 꾸리겠다는 계획이다. 이합집산이 끝날 때까지 이탈리아 정치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반파시스트 집회 참가자들 [EPA=연합뉴스]

반파시스트 집회 참가자들 [EPA=연합뉴스]

 총선을 앞두고 부동층과 기권층을 합한 비율은 35%에 달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로마 루이스대 로베르토 달리몬테 교수는 "총선이 임박해 마음을 정하는 유권자가 많을 것"이라며 "그들의 선택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의 발호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잠재우긴 했지만 같은 해 12월 오스트리아에선 극우 정당이 주류 정치세력으로 자리를 잡았다. 파시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이탈리아 총선의 결과를 유럽 국가들은 올해 최대 변수로 꼽고 있다. 동맹당과 오성운동은 EU 체제에 매우 회의적이다. 정당별로 유로존에 대한 입장도 다르다. 더욱이 이번 총선의 결과는 4월 헝가리 총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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