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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권력의 성폭력 갑질 참담 … 정부가 근절 대책 앞장서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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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호 02면

사설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문화권력’들의 추잡한 민낯이 연일 공개되고 있다.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용기 있는 ‘미투(#MeToo)’ 운동이 전방위로 확산 중이다. ‘문화계 미투’는 2주째 계속되고 있다. 서지현 검사의 ‘미투’부터 치면 3주째 이어지는 고백 릴레이다. ‘미투’ 여성들을 지지하고 함께 하려는 ‘위드유(#WithYou)’도 가세하고 있어 ‘성폭력 적폐’ 고발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연극계를 중심으로 번지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 이런 사례로부터 자유로운 분야는 별로 없을 것이다. 한 ‘미투’ 여성이 유명인 가운데 몇 사람 빼고는 거의 연루돼 있다고 한 고백이 그런 정황을 보여준다. 음악·미술계는 어떤가. 영화나 방송 연예계는 오래전부터 이미 수차례 논란이 돼왔다. 유명 사진작가와 뮤지컬 제작자의 성 추문도 속속 SNS를 통해 폭로되고 있다. 가톨릭 신부의 이름까지 나온다. 개강을 앞둔 대학가도 심상치 않다.

2005년 최영미 시인이 『돼지들에게』라는 시집을 냈을 때는 요즘같이 크게 화제가 되지 않았다. 성추행을 일삼는 문화권력을 최 시인은 ‘돼지들’이라 했다. 돼지로 지목된 이가 한두 명이 아니었지만 쉬쉬하고 넘어갔다. 성폭력만 관행이 아니라 침묵과 방관도 오래된 일상이었다. 술자리에서 안줏거리로 그 돼지가 누구누구라고 하면서 마치 무슨 대단한 첩보라도 되는 양 이야기될 뿐이었다. 그렇게 넘어갔었다. 2015년에도 ‘문학계 성폭력’ 문제가 불거졌지만 사회적 이슈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018년의 미투는 양상이 다르다. 국내의 대표적 연극연출자로 손꼽혔던 이윤택의 성폭력 추문은 ‘미투’에 공감하는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차마 글로 옮기기도 민망한 추악한 행동이 자행됐다. 그가 이끈 극단은 ‘퇴폐 조폭’을 연상시켰다. 사과 기자회견조차 리허설을 거쳐 거짓을 반복하는 모습을 알게 된 국민들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자랑할 만한 민주화의 역사도 간직한 대한민국에 이윤택 사건과 같은 ‘봉건 잔재’의 참상이 아직도 기생하고 있었다. 남성 거장이 여성 제자에 가한 성폭력 문제로 이번에 문제가 불거졌지만, 그 속성은 마치 봉건시대 지배-피지배의 종속적 신분 구조처럼 보이는 것이다. 학술적 용어로 표현하면 근대성과 전(前)근대적인 요소가 기이하게 공존하는, 이제는 탈피해야 할 최후의 낙후된 양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폐쇄적인 ‘갑을(甲乙) 구조’가 문제다. 도제식 교육이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그 방식이 폐쇄적이어선 안 된다. 배역 제공이나 작품 선정 등을 미끼로 을(乙)에게 은밀하게 가해지는 성폭력 구조가 더 이상 용인되어선 안 된다. 어느 분야든 권력만 잡으면 자기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같은 전근대적 사고방식 자체가 자리 잡지 못하게 제도를 만들고 그런 교육이 진행돼야 한다.

정부는 사태의 추이를 관망만 할 때가 아니다. 문화예술 분야는 대개 정부 지원으로 먹고산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인물들은 문화권력답게 더 많은 지원금을 따낼 수 있는 이들이다. 앞으로 정부의 활동자금 지원이나 법적인 제재 강화도 이런 점에 초점을 맞춰 집행돼야 할 것이다. 마치 급한 불 끄듯이 법만 만들어 놓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법이 현장에서 실제 어떻게 작동되는지 지속적인 관리와 보완 대책이 이어져야 한다. 미투에 참여한 여성들이 2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세심한 조치와 따뜻한 관심이 뒤따라야 한다. 성폭력을 항의하면 오히려 ‘뭐 그런 것을 두고 그러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가 바로 ‘괴물’들이 자라는 온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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