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는 한반도서 평화의 행군 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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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평화단체인 '브레이킹 디 아이스(Breaking the Ice)' 설립자로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리비아 트리폴리까지 5500km 사하라사막 평화 대장정을 이끌고 있는 헤스켈 나타니엘(44.사진)은 모래폭풍을 뚫고 21일 리비아 국경지역에 도착한 뒤 본사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갈등이 많은 한반도에서 평화의 캐러밴을 열면 아주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며 "이번 행군을 마치고 4월 초 베를린의 본부로 돌아가면 바로 구체적인 추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구상 중인 '한반도 평화의 캐러밴' 계획이 있나.

"2004년엔 팔레스타인인 4명과 이스라엘인 4명이 만나 얼음 덮인 남극을 함께 탐험했고, 올해엔 열사의 사막에서 평화의 캐러밴이 진행되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하늘을 이용한 이벤트를 해볼 계획이다. 남북한 양쪽에서 열기구를 띄워 교차시키는 행사를 생각 중이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비무장지대에서 할 수도 있다. 남북한을 모두 잘 알거나 방문했던 국제적 인사,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 남북한 사람을 모아 한반도를 종주하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적대적인 출신 배경을 갖고 있는데, 갈등은 없나.

"물론 있다. 참가자들의 종교는 유대교.가톨릭.이슬람 등 각색이다. 살아온 방식과 인생관도 크게 다르다. 공통점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그래서 때론 격한 토론이 벌어진다. 정치적 입장 차이도 분명하다. 토론 주제는 아프가니스탄이나 탈레반, 중동-이스라엘 문제, 팔레스타인 분쟁 등 다양하다. 어렵기는 하지만 결국 대화와 신뢰를 통해 이런 갈등을 극복하고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21일 리비아 입국이 거부됐는데.

"리비아 측이 이스라엘인 3명에게 비자를 주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팀이 갈라질 수는 없다. 모두 같이 가든지, 아니면 함께 되돌아갈 것이다. 우리는 고난을 함께하는 한 팀이다."

세계 평화를 염원하며 사하라 사막 횡단에 도전하고 있는 평화의 캐러밴 팀에는 이스라엘인 3명이 들어 있다. 팔레스타인 자폭 테러로 어머니를 잃은 여성, 레바논전에 참전했다가 시리아군의 포로가 됐던 전투기 조종사, 그리고 행군을 주관하는 나타니엘이다.

캐러밴 팀은 리비아 입국비자를 미리 받지 않은 채 대장정을 떠났다. 입국이 거부된 일행은 22일 새벽 이집트 국경 도시 살룸의 한 호텔로 되돌아와야 했다.

-왜 '브레이킹 디 아이스'를 설립했나.

"얼음처럼 차가운 마음의 벽을 깨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목표는 후손들에게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를 물려주는 것이다. 9.11테러와 이라크전쟁 등 끔찍한 일을 지켜보면서 더욱 각오를 다졌다. 나는 이스라엘인으로 군 복무 중 레바논전에도 참전했다. 하지만 영국 런던에 유학 중 아랍인들과도 서로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런 체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자는 취지에서 단체를 만들었다."

-평화의 캐러밴을 진행하면서 겪고 있는 가장 큰 애로는.

"가혹한 자연환경과 육체적인 고통이다. 어제는 삼킬 듯이 부는 모래폭풍으로 인해 행군을 몇 번이나 멈췄다. 25도가 넘는 낮과 밤의 일교차도 심신을 괴롭히고 있다."

베를린(독일)=유권하 특파원, 살룸(이집트)=서정민 특파원

◆ 브레이킹 디 아이스(Breaking the Ice)=이스라엘인 헤스켈 나타니엘의 주도로 2004년 독일 베를린에 설립된 국제평화단체다. 적대감정을 가진 분쟁 지역 주민들이 만나 서로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돕는 행사를 주선하고 있다. 단체 이름은 '서먹서먹한 관계 깨기'라는 뜻이다. 올해 행사인 사하라 평화 대장정에는 이스라엘군에 친척을 잃은 팔레스타인인, 9.11테러 때 동료 소방대원 343명을 잃은 미국 뉴욕의 소방대원, 후세인 아들의 대역을 하던 이라크인 등이 참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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