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올랐어 ? 우리 집값도 올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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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높은 분양가가 주변 집값을 들쑤시고 있다. 새 아파트 분양가가 주변 시세를 웃돌자 인근의 기존 아파트.분양권 값이 들썩거리는 것이다.

수도권은 신도시와 택지개발지구, 지방의 경우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등 개발 재료가 많은 곳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업체들이 이들 지역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은 점을 파고들어 분양가를 높이고 보는 '배짱 분양'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경기도 김포 장기동 일대 40평형 이상의 아파트는 최근 한 달 새 3000만~5000만원 뛰었다. 21일부터 청약신청을 받은 김포신도시 장기지구 유보라 등 중대형 아파트값이 평당 1000만원에 이르자 집주인들이 분양가에 맞춰 호가를 올렸기 때문이다.

SJ컨설팅 정준호 사장은 "지난달 평당 800만원대였던 장기동 일대 40평형대 이상 매매값이 평당 900만원대로 껑충 뛰었지만 매물이 귀하다"고 말했다. 장기지구에서 5km 이상 떨어진 풍무동 중대형도 이달 들어 500만~1000만원 올랐다. 집값 안정을 위한 신도시가 주변 집값 상승을 부채질하는 것이다.

15일부터 청약신청을 받은 하남 풍산지구의 고분양가 역풍도 거세다. 중대형 분양가가 예상보다 높은 평당 1300만원대에 이르면서 주변 아파트값이 덩달아 뛰고 있다. 풍산지구에서 2~3km 거리의 창우동 은행 37평형은 3억6000만원으로 한 달 새 2000만~3000만원 올랐다. 가이드공인 관계자는 "풍산지구 분양가가 비싼 데도 불구하고 청약 경쟁률이 높자 주변 집주인들이 집값 오르기를 기대하며 매물을 내놓지 않는다"고 전했다. 반면 풍산지구에서 4km 가량 떨어져 고분양가 영향을 덜 받는 덕풍동 쌍용 42평형은 한 달 동안 500만원 상승에 그쳤다.

강원도 원주에서는 10일 반곡동 벽산블루밍 2차 분양 이후 행구.단계동 일대 기존 아파트와 분양권값이 1000만원 이상 뛰었다. 이 아파트 분양가는 평당 590만~648만원이다. 벽산이 지난해 말 인근 개운동에서 분양한 아파트보다 30평대 기준으로 평당 10만~20만원 오른 것이다. J공인 관계자는 "기업.혁신 도시 재료가 뜬 데다 전매 제한이 없어 투자 수요가 많다"며 "따라서 업체들이 고분양가 전략을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충북 청주에서도 지난달 청약받은 사직동 주상복합아파트 두산위브 분양가가 평당 764만~975만원에 이르자 주변 집값이 강세다. 사직동 쌍용 2차 32평형은 8500만원으로 한 달 새 5% 이상 뛰었다. T공인 관계자는 "주상복합 아파트의 분양가가 주변 같은 평형 시세의 두 배 수준이다 보니 기존 아파트값이 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북 구미 역시 1월 옥계동 현진 에버빌(평당 598만~790만원) 분양 이후 일부 아파트값이 500만~1000만원 올랐다. 좋은터공인 관계자는 "지난해 말만 해도 구미 30평형대 아파트값이 평당 400만원대에 머물렀는데 옥계동 분양 이후 집주인들이 평당 500만원대로 올라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외주건 김신조 사장은 "고분양가→기존 집값 상승→고분양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급등한 땅값을 잡는 게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도 "분양가 상승의 주 요인이 땅값에 있는 만큼 정부도 땅값 상승을 억제하는 정책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원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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