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과 유혈전 해결 요원|건국 40년 맞는 이스라엘의 「어제와 오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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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4일로 건국 40주년을 맞는 이스라엘은 갖가지 축제를 며칠 전부터 벌이며 자축하고 있으나 반세기 가까운 유대·팔레스타인 민족간의 유혈대립은 아직도 쉽게 해결될 기미가 없다.
이스라엘은 1948년 5월14일 팔레스타인 민족은 물론 주변 아랍국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건국을 선언, 이후 국가형태를 정립하면서 팔레스타인 민족을 압박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스라엘 건국은 이미 70년 전인 1917년 영국 외상 「밸푸어」가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 및 신 국가 건설을 유도하는 이른바 밸푸어선언으로 태동되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은 「히틀러」의 학살의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2차대전 후부터 팔레스타인 이주를 본격적으로 개시, 46년에는 절정을 이루었으며, 1백만 팔레스타인 민족을 밀어내며 정착촌을 건설, 끝내 국가건설에 성공했다.
그러나 3천년 이상 팔레스타인에 살아온 팔레스타인 민족의 반발과 아랍국민들의 동조는 이스라엘·아랍권과의 5차례 이상의 대규모 전쟁을 치르는 피의 대결로 이어졌다.
두 민족간의 전쟁은 다른 국지전과 달리 양쪽 모두 생존권을 위한 싸움이라는 점에서 해결이 어려운 것이다.
특히 지난 67년의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아랍인들의 거주지역을 계속 병합, 건국 초기보다 6배의 국토를 확보하고 요르단강 서안(웨스트뱅크) 지역과 가자지구에 대한 점령을 계속, 팔레스타인의 반발은 더욱 거세져 아직까지 피의 반격과 보복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스라엘은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 난민들의 반발과 국제 여론의 영향을 받아 중동문제해결 방안을 놓고 국내에서도 여론이 분열돼 있다.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을 계속하고 있는 지역을 되돌려주자는 것과 차후에 있을지도 모르는 아랍권과의 전쟁 때 이 지역 확보는 계속 중요하다는 전략적 이유로 현상 고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난 78년 「카터」 미국 대통령의 주선으로 타결된 「사다트」 이집트대통령과의 캠프데이비드 협정으로 73년 욤키푸르 전쟁 때 장악했던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반환, 대 이집트 관계를 완화한 이후 아직까지 커다란 전쟁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레바논 침공과 대 시리아 공격 등으로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군사적 선제공격을 불사한다는 식으로 「국가안보」를 지키고 있다.
이스라엘 건국 40년이 주는 특별한 의미는 이스라엘 국민의 생존을 위한 사투와 이와 관련된 엄청난 희생이 한 세대를 다시 넘기고 있다는 점과 유럽·미국 등 제3국의 이익이 팔레스타인 등 당사자 약소국민에게 얼마나 커다란 생존의 문제를 안겨주고 있느냐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이제 인구 4백20만명에 1인당 국민소득 5천1백달러의 중진산업국으로 15만명의 현대무기를 갖춘 막강한 중동 군사대국으로 성장해 있다.
유대인들이 40년만에 숱한 주변국가의 반대와 도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강대한 나라를 건설한 것은 현대사에서 특이한 국가성립 모델이 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팔레스타인 민족의 항전은 이들을 리드해온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미국 등의 압력으로 심지어 아랍권에서마저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점차 세력마저 약화되고 있어 앞으로의 중동사태 발전 추이가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현재 비교적 안정되고 있는 대 아랍권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웨스트뱅크 및 가자지구 반환을 주장하는 야당의 요구가 강해지고 있어 이스라엘 40주년은 어떤 면에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이 같은 국경 재조정문제는 오는 11월 이스라엘 총선에서 결말이 날 것으로 보여 1988년은 어떤 면에서 이스라엘 재 탄생의 해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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