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스 "김여정 靑 비밀 회동, 北 막판 취소로 무산" 비핵화 대화 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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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앞뒤 줄에 앉아 눈길도 주지 않았던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이튿날 10일 오후 청와대에 비밀 회동을 갖기로 했다가 두 시간 전 무산됐다고 펜스 부통령측을 인용해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했다. [AP=연합뉴스]

지난 9일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앞뒤 줄에 앉아 눈길도 주지 않았던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이튿날 10일 오후 청와대에 비밀 회동을 갖기로 했다가 두 시간 전 무산됐다고 펜스 부통령측을 인용해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했다. [AP=연합뉴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평창올림픽 도중 청와대 비밀 회동을 약속했다가 두 시간 전 북측이 취소해 무산됐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평창에서 북ㆍ미간 고위급 비밀 접촉을 약속했다가 마지막 순간 북한이 틀었다는 것이다.

이방카 폐막식 참석 기간 북·미 접촉 가능성도 #워싱턴 포스트(WP) 펜스 측 인용 전말 공개 #"북, 2주전 한국주선 CIA에 '펜스 만나고 싶다' #10일 당일 청와대 북·미 양자 회동 최종 합의, #북, 2시간 전 제재, 탈북자 만남 불만 취소""

미 백악관 부통령실에 따르면 펜스 부통령은 평창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한 방한 이전에 북한 당국자들과 비밀 회동을 약속했고, 방한 마지막 날인 2월 10일 김여정 부부장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청와대에서 만나기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비밀 회동 약속 시각 두 시간 전에 북한 측이 불참을 통보해 회동이 무산됐다. 북한은 취소를 통보하면서 펜스 부통령이 전날 탈북자들과 회동한 것과 도쿄에서 새로운 대북 제재를 하겠다고 발표한 데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고 부통령실 관계자는 밝혔다.

닉 아이어스 부통령 비서실장은 “북한은 펜스 부통령의 메시지를 완화해 평창올림픽을 자신들의 선전 무대로 양보받겠다는 바램으로 회동에 매달렸지만, 부통령은 순방 첫날 밝힌 대로 예쁜 사진으로 살인 정권을 눈가림하려는 전략을 저지했다”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과 북한의 비밀 회동은 만들어지기까지 2주가 걸렸다. 백악관의 한 고위 관리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북한이 방한 기간에 펜스 부통령과 만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입수하면서 회동이 구체화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다른 관리는 “북ㆍ미 양국의 중재역할을 하면서 회동을 처음 주선한 건 한국 정부”라고 말했다.

미국이 북한과 비밀 접촉을 갖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한 건 지난 2일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존 켈리 비서실장과 백악관 집무실 회의에서다.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도 전화로 회의에 참석했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도 일부 논의에 참여했다.

북ㆍ미는 회동 당일인 10일 오전에서야 회동 세부 사항에 합의했다. 양측 보안상 요구를 충족하는 청와대에서 같은 날 오후 만나되 한국 정부 관리는 동석하지 않고 북ㆍ미 양자만 회동하는 조건이었다. 미국 측은 펜스 부통령과 국가안보회의(NSC) 대표, 미 정보기관 책임자와 아이어스 비서실장이 참석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북한도 김여정 부부장과 김영남 위원장, 그리고 당국자들이 참석하기로 했다고 한다.

펜스 부통령 측이 무산된 회동을 열흘 지나 공개한 것은 “평창올림픽에서 북ㆍ미 직접 대화의 기회를 저버린 것은 펜스 자신이 아니라 북한 김여정임을 분명히 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헤더 노어트 국무부 대변인은 보도 후 논평에서 “방한 기간 북한 대표단의 지도자들과 짧은 회동 가능성이 생겼고 펜스 부통령은 북한이 불법 핵미사일 개발을 포기할 필요성을 깨닫게 하는 기회로 활용하려고 했다”며 “마지막 순간 북한 관리들이 불참을 결정하며 기회를 잡지 않은 건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 본인이 방한 직전 “북한 대표단 접촉과 관련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두고 볼 것”이라며 여지를 열어놓은 것도 비밀 회동을 염두에 뒀던 것으로 해석된다. 대신 펜스 부통령은 올림픽 개막식 공개석상에선 북측 대표단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9일 평창올림픽 리셉션에선 늦게 도착해 같은 테이블의 북측 대표단과 의례적 인사도 나누지 않고 먼저 떠났고, 이어진 개막식에서도 바로 뒷자리의 김여정 부부장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북한 대표단과 공개적인 접촉이 북한의 정치 선전에 이용당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사전 각본대로였다.

트럼프 대통령 장녀인 이방카가 23일 평창올림픽 폐막식 참석을 위해 방한하는 것을 계기로 폐막식 북·미 접촉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외교 소식통은 “이방카가 방한 기간 북한 대표단과 직접 접촉을 하지 않더라도 북ㆍ미 예비 접촉을 어떻게 시작할지 협의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어트 대변인은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로 나아가기 위한 신뢰할만한 대화에 합의할 때까지 외교적, 경제적 고립을 심화시키기 위한 최대한 압박 캠페인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밀 회동을 무산시킨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구걸하지 않겠다"며 북·미 접촉을 거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비핵화 대화를 압박하는 의도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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