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해운 비자금 최대 수천억 추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검찰이 SK해운 비자금의 실체를 규명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아직 정확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비자금 규모가 최대 수천억원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게 금융 당국과 검찰 일각의 추정이다.

이런 엄청난 자금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수사 인력이 집중 투입된다 해도 단기간에 해치울 수 없다. 특히 비자금 거래 과정에 SK해운뿐 아니라 SK증권 등 다른 관계사들이 얽혀 있어 그만큼 풀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검 수사는 지금까지의 언론 보도 내용보다 훨씬 진척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 20일 금융감독원이 SK해운의 분식회계 혐의를 고발해오기 전부터 검찰은 관련 부분을 확인 중이었다.

SK증권을 압수수색하고 손길승 회장을 소환 조사한 것도 수사가 이미 검토단계를 벗어나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추석 연휴(10~12일) 이후 비자금을 받은 인사들의 윤곽이 나올 수도 있다.

검찰의 수사 자세는 단호해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수사를 통해 고질적인 정경유착의 고리를 확실히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관계자도 "경제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경제가 어렵다고 의혹을 적당히 덮는다면 그게 어디 검찰이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SK해운의 분식회계 부분은 서울지검 금융조사부로 넘기되 이를 통해 조성된 비자금은 대검 중수부에서 추적할 방침이다.

◇SK그룹.정부 반응=SK그룹은 다시 엄청난 풍랑이 몰아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오너인 최태원 회장과 손길승 그룹 회장은 물론 SK그룹의 재무 담당자들이 줄줄이 대검 중수부에 소환돼 조사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그룹 분위기는 더욱 뒤숭숭하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비자금 조성이 사실일 경우 SK는 말할 것도 없고, 나라 경제가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감독원은 ▶SK글로벌이 2천9백억~4천8백억원에 달하는 아상과 스마트전자의 차입금을 대신 갚아줬으며▶이때 SK해운은 기업어음을 발행해 SK글로벌에 빌려줬는데도 회계 처리를 하지 않았다는 등의 분식회계 혐의 내용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업계에선 검찰 수사가 단순한 분식회계 차원에서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SK 측은 금감원 조사를 받을 당시 분식회계 관련 자료가 없다며 조사를 사실상 거부하다시피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금감원이 '자료 제출 요구 불응'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것은 비자금 문제가 불거진 현대상선과 SK해운 등 두 건뿐"이라며 사실상 '비자금 수사'로 번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목재회사인 아상(구 선경목재)은 분식회계가 시작된 1997~98년 당시 직원이 4~5명에, 자기자본은 마이너스 3천7백억원에 달하는 부실회사였다"면서 "이런 회사가 2천5백억원가량을 차입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SK 측은 崔회장이 구속 중인 상황에서 손길승 회장마저 구속되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다. SK 관계자는 "리더가 없으면 그룹이 제대로 굴러가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비자금 조성이 사실이라면 孫회장이 책임을 면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82년부터 지금까지 SK해운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욱.강주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