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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과 하트 두 장면, 이것이 올림픽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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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스포츠맨십이 뭔지 보여 줬다.”(NBC)

승부는 치열했고 결말은 아름다웠다

“한·일 정상 결전의 마지막은 아름다운 결말이었다.”(스포츠닛폰)

“역사적인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두 나라지만 화합을 보여 줬다.”(AP통신)

18일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가 끝난 뒤 은메달을 딴 이상화(29·스포츠토토)와 금메달리스트 고다이라 나오(32·일본)는 어깨동무를 하고 미소를 지었다. 고다이라는 눈물을 쏟는 이상화를 꼭 안아 주면서 한국어로 “잘했어”라고 말했다. 서로 “존경한다”며 포옹하는 장면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고다이라, 눈물 쏟은 상화에게 “잘했어”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경기가 끝난 뒤 이상화(왼쪽)와 고다이라 나오가 어깨동무를 하고 웃고 있다. [뉴스1]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경기가 끝난 뒤 이상화(왼쪽)와 고다이라 나오가 어깨동무를 하고 웃고 있다. [뉴스1]

평창올림픽 개막 이전부터 둘의 경쟁은 치열했다. 이상화는 개막 직전 “이제 ‘그 선수’와 비교는 그만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다이라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고 ‘그 선수’라고 표현했다. 세계기록을 갖고 있고, 올림픽을 두 차례나 제패한 선수의 자존심이었다.

고다이라도 이상화에 대한 질문엔 “대단한 선수”라고 짧게 대답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경쟁을 펼쳐 온 만큼 경기 전까진 철저하게 ‘넘어야 할 상대’로 인식했다. 하지만 두 선수는 이날 경기장에선 페어플레이를 펼치며 올림픽 정신이 무엇인가를 몸소 보여 줬다. 이날 이상화의 바로 앞 조인 14조에서 경기를 펼친 고다이라는 올림픽기록을 세우며 골인한 뒤 일본 관중이 환호성을 지르자 조용히 해 달라는 뜻에서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대는 ‘쉿’ 동작을 취하기도 했다. 바로 다음 조의 이상화가 자신의 기록을 의식하지 않도록 사려 깊은 행동을 한 것이다.

이상화, 고다이라 택시 요금도 내줘

두 선수는 경기가 끝난 뒤엔 곧바로 ‘친구’로 돌아갔다. 고다이라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상화는 항상 친절하다. 3년 전 서울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당시 나는 빨리 네덜란드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상화가 공항까지 택시를 불러 주고 요금도 내줬다. 결과에 대해 아쉬웠을 법도 한데 나를 생각해 주는 것 같아 몹시 기뻤다”고 돌이켰다. 이상화도 “고다이라와 레이스를 하고 기분 나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택시요금은 확실히 내가 냈다. 좋은 친구이자 라이벌”이라고 말했다.

쇼트트랙 1500m에서 금메달을 딴 최민정(왼쪽)이 500m 경기에서 판정 시비가 있었던 킴 부탱 과 손가락 하트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 [우상조 기자]

쇼트트랙 1500m에서 금메달을 딴 최민정(왼쪽)이 500m 경기에서 판정 시비가 있었던 킴 부탱 과 손가락 하트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 [우상조 기자]

◆ 최민정과 부탱의 ‘손 하트’=같은 날 평창 메달플라자에서 열린 쇼트트랙 여자 1500m 시상식에서도 훈훈한 장면이 나왔다. 금메달리스트 최민정(20·성남시청)과 동메달리스트 킴 부탱(24·캐나다)이 손으로 함께 하트를 만드는 세리머니를 한 것이다.

두 사람은 지난 13일 여자 500m 결승전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최민정이 2위로 골인했지만 레이스 도중 부탱을 밀었다는 판정을 받고 실격됐다. 최민정은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고, 부탱은 동메달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한국 누리꾼들은 부탱의 소셜미디어에 몰려가 악성 댓글로 도배를 했다. 결국 부탱은 소셜미디어를 비공개로 전환해야 했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캐나다 경찰이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날 부탱과 최민정의 다정한 모습은 ‘악플러’들에게 경종을 울릴 만한 장면이었다.

최민정은 시상식이 끝난 뒤 “부탱이 먼저 (손가락 하트를 그리자고) 제안했다. 부탱과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가 경기에 최선을 다한다. 판정은 항상 심판의 몫”이라고 말했다. 부탱도 “모든 한국인이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상처를 받긴 했지만 화가 난 것은 아니다. 이미 일어난 일로 걱정하고 싶지 않다”며 미소 지었다.

악플 상처 킴 부탱, 최민정과 손하트

1등 최민정 축하한 4등 김아랑

1등 최민정 축하한 4등 김아랑

◆1등 최민정 축하한 4등 김아랑=지난 17일 쇼트트랙 여자 1500m에서 4위에 오른 김아랑(23·고양시청)의 마음씨도 아름다웠다. 김아랑은 이날 최선을 다해 레이스를 펼쳤지만 메달을 따는 데 실패했다. 아쉬울 법도 했지만 레이스를 마친 뒤 1위에 오른 팀 후배 최민정에게 다가가 환하게 웃으며 축하인사를 건넸다(작은 사진). 김아랑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최민정에게 “고생했다. 울지 마”라며 어깨를 끌어안았다.

김아랑은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맏언니’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코치진 구타사건 등으로 팀 분위기가 가라앉자 심석희(21·한국체대)의 생일에 맞춰 축하자리를 마련해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소셜미디어에 동료들과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힘들어도 힘내기! 흔들리지 말기. 수키(심석희) 생일 추카추”라고 썼다.

강릉선수촌에서 최민정과 같은 방을 쓰는 김아랑은 또 지난 13일 여자 500m 경기가 끝난 뒤 최민정이 귀가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1500m 예선에서 넘어져 탈락한 심석희에게는 “힘들겠지만 아직 경기가 남아 있으니 준비를 잘하자”며 다독였다. 김아랑은 “20일에는 가장 중요한 3000m 계주가 있다. 다 같이 웃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내 몫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올림픽 정신

올림픽을 만든 피에르 쿠베르탱 남작의 명언이 올림픽 정신을 대변한다. “올림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참가’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승리’가 아니라 ‘노력’인 것과 같은 이치다.”

강릉=김효경·김원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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