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도, 발목 부상도 극복한...하뉴의 '만화같은' 올림픽 2연패 스토리

중앙일보

입력

1위가 확정된 뒤 눈물을 흘리는 하뉴. [AP=연합뉴스]

1위가 확정된 뒤 눈물을 흘리는 하뉴. [AP=연합뉴스]

올림픽을 3개월 앞두고 발목 부상을 당했다. 한동안 스케이트조차 제대로 신을 수 없었다. 올림픽 출전은 물 건너 간 것처럼 보였다.

하뉴 유즈루(24·일본)는 17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3개월 전 발목 부상을 당했던 바로 그 선수다. 시상식을 마치고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아무리 만화 주인공이라고 해도 이런 설정은 좀 지나친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하뉴는 지난 16일 열린 쇼트프로그램에서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선보이며 111.68로 1위에 올랐다. 지난달까지도 올림픽 출전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던 그가 완벽한 연기를 선보일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날 프리스케이팅에서는 두 차례 점프 착지 실수가 있었지만 기술점수(TES) 109.55점, 구성점수(PCS) 96.62점을 더해 206.17점을 받았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 이어 남자 싱글 올림픽 2연패다. 하뉴는 "생각보다 인대 손상 상태가 심했다. 부상 탓에 스케이트를 신지 못하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많았다"며 "극복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줬던 분들이 생각나서 (경기 후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했다.

관중석을 향해 90도로 감사인사를 전하는 하뉴. [AP=연합뉴스]

관중석을 향해 90도로 감사인사를 전하는 하뉴. [AP=연합뉴스]

하뉴의 피겨인생은 그의 말대로 '현실성이 크게 떨어지는' 한 편의 만화같다. 하뉴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센다이 출신이다. 당시 매그니튜드 9의 강진으로 후쿠시마의 원전이 파괴됐고, 2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센다이의 아이스링크에서 훈련 중이었던 하뉴는 스케이트를 신은 채로 밖으로 대피할 정도로 상황이 급박했다. 대피소에서 가족들과 함께 나흘 동안 지내기도 했다. 이후 훈련을 재개했지만 훈련장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비용 부담도 컸다.

당시 기억을 떠올린 하뉴는 "전기, 수도가 끊기는 등 굉장히 힘들었다"라며 "쓰나미와 원전 사고로 피해를 받은 이웃들이 매우 많다. (내 금메달이) 그들에게 용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2022년 베이징올림픽에서 3연패에 도전하겠는가'는 질문에 하뉴는 "지금으로선 오른쪽 발목 부상을 회복하는 것이 먼저"라며 "3연패가 쉬운 일은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릉=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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