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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신풍자」냐 「언어파괴」냐|자리잡는 젊은 시인들의 「문명비판 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80년대 산업화사회의 타락한 물신주의를 폭로, 야유하는 문명비판시가 일군의 젊은 시인들에 의해「집단화된 시적유파」로 자리잡고 있다.
멀리는 『시여 ! 침을 뱉어라』라고 외친 60년대 시인 김수영으로부터 70년대 이후 현대물신주의를 방법론적으로 야유·비판한 오규원, 문명에 대한 환멸을 광물적 이미지로 밀고나간 이하석등에 닿아있는 80년대 문명비판 시계열은 「양식의 파괴 」「파괴의 양식화」를 선언하면서 제도적 이데올로기에 고통스럽게 대항한 황지우와 황폐한 현대문명에 도시적 상상력으로 맞선 최승호등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시적 계통을 밟아 형성된 80년대 후반 최근의 문명비판시인들로는 『지상의 인간』『반시대적 고찰』의 박남철, 『춤꾼 이야기』『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등의 이윤택, 『반성』『차에 실려가는 차』등의 김영승, 『우리 사는 세상』등의 윤성근, 『햄버거에 대한 명상』『길 안에서의 택시 잡기』등의 장정일, 『독자구함』등의 박중식등이 꼽힌다.
이들은 황지우·이성복·최승자·마광수등 80년대 전반시인들의 다양한 우상파괴·형태파괴의 시정신을 계승하되, 「타락한 사회」를 적극적으로 폭로, 야유하기 위해 「타락한 언어」를 방법적으로 동원함으로써 비어·속어·언어파괴·냉소주의등의 극단적 면모를 과격하게 드러내고있다. 이에 따라 「상상력을 통한 현실의 재구성」이라는 기존 시문법을 파괴하고 경험을 「날것」그대로 동원함으로써「언어테러리즘」이라는 용어까지 낳고있다.
김영승은 최근작 『그대 시집가는 날』에서 『누런, 아니 적갈색 똥오줌 물 때 낀/변기 같은 너의 그 <변기>에‥‥/나는 내 뜨거운 <잣죽>을‥‥』등의 표현까지 서슴치 않으면서 절망적 사랑을 그려냈다. 이는 그가 첫시집『반성』에서 보여주었던 자기학대·언어학대의 「위악적 제스처」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패한 현대문명과 왜소한 현대인의 삶을 독특한 화법및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통해 형상화한 첫시집『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냈던 장정일은 최근시집『길 안에서의 택시 잡기』에서 문명에 대한 공격성을 극대화한 여러 편의 시를 싣고있다. 이를테면 절망적이고 기계적인 성행위묘사가 동원된 「늙은 창녀」「심야특식」등의 작품은「도시적 삶의 불모성」을 드러내는 좋은 예가 된다.
이같은 문명비판시들은 비인간화·물신화·기계화하고있는 도시문명의 창살에 갇혀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의 비극을 환기시켜주는「80년대적 시적장치」로 이해된다.
문학평론가 정현기씨는 『이들의 시는 우리시대가 서정시를 허용하지 않는 황폐한 시대라는 고통스런 인식에서 출발한다』며 『이들 역시 누구 못지않게 아름답고 깨끗한 삶을 꿈꾸는 서정적 토대를 갖고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문명비판 시들은 문명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보다는 자극적인 비·속어의 경쟁적 도입으로 언어의 타락화·시정신의 비속화를 초래하고있다(문학평론가 권영민·최동호)는 비판도 적지 않다. 문학평론가 장석주씨는 「누가 더 자극적인 표현을 쓰는가」를 경쟁하는 듯한 일부 들뜬 시들에 대해 『삶에 대한 진정성이 결여된 동어반복적 언어 학대는 상투적인 자기의식 베끼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기형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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