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고작 석 달 회의로 통신비 결론 내려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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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하선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하선영 산업부 기자

하선영 산업부 기자

지난 9일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 회의장에서는 경실련·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회의에 항의하며 중도 퇴장했다. “통신사들이 요금 인하 방안에 대해 반대하기만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날도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 정책협의회는 오는 22일 임기가 끝난다.

지난해 1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도해서 만든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는 정부의 또 하나의 ‘용두사미’ 정책으로 기록될 듯하다. 이름부터 거창한 이 사회적 통신비 협의 기구에는 이동통신사·단말기 제조사·전문가·시민 단체 등 관계자 20여 명이 참여해 스마트폰 사용료 등 통신비 정책을 논의했다.

시장의 특정 재화 가격을 조정하기 위해 정부가 ‘사회적 협의 기구’까지 만든 것은 첫째 정부가 이동통신 서비스를 공공재라고 보기 때문이고, 둘째 통신비 인하가 문재인 정부가 내건 공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 기구라고 해서 수년간 평행선을 달리며 의견 불일치를 보인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입장을 단기간에 통일시킬 수 없다. 통신비를 공공재로 봐야 하는지는 제쳐놓더라도 이해관계가 복잡한 통신비 문제를 고작 석 달 회의로 허겁지겁 결론 내리려는 것도 납득이 안 된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정부도 이 같은 초라한 회의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한 모양이다.

과 기 정통부 측은 “통신비 인하에 대한 의견 일치가 보든 아니든 여러 의견을 가감 없이 정리해 국회로 전달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이변이 없는 한 월 2만원대에 데이터 1GB를 제공하는 보편요금제 등을 도입하기 위해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겠다는 뜻이다.

이후 입법화 과정에서도 정부는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의 ‘결론 없는 결과’를 토대로 “업계와 소비자들의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할 공산이 크다.

통신사들도 시민단체와 정부의 압박을 받기 싫으면 알아서 자구책을 내놔야 한다. 대다수 소비자가 갈수록 비싸지는 통신비를 부담스러워 한다. 여기에 통신사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은 복잡한 요금제 속 각종 꼼수, 낮은 서비스 만족도 등에서 기인한다. 정부도 일각에서 주장하는 ‘사후신고제’를 면밀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에 새 요금제를 사실상 인가받는 현재 방식 대신 자율적으로 여러 요금제를 출시해 경쟁을 유도하자는 것이다. 대신 요금제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하는 등 소비자가 피해를 보면 처벌받아야 한다. 통신비 논란을 정부의 직접 개입으로만 해결하려는 발상을 버려야 한다.

하선영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