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상위 그룹의 맹추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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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이른바 중견그룹들이 재계의 「태풍의 눈」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이후, 그러니까 아주 최근의 일이다. 매출액으로 따진다면 선두 5대 그룹과 아직도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성장속도나 활력면에서는 오히려 이들이 더 앞서고 있는 면이 적지않다.
이들은 젊고 힘에 넘쳐있다. 미래를 향한 뉴 비즈니스의 장에서는 어느 누구와도 한판싸움을 사양하지 않는다. 원로들이 보기에는 때때로 무모한 운신도 불사한다.
장차 한국 재계의 선두그룹 랭킹을 단숨에 뒤흔들어놓기에 충분할 정도로 이들의 패기는 대단하다.
쌍룡·한국화약·한일합섬·동부그룹·금호그룹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저마다 분출되는 에너지를 바탕으로 무서운 속도를 내며 세를 뻗쳐나가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젊음만을 내세우는 신출나기 기업들은 결코 아니다. 기업의 역사는 오히려 대우같은 톱 클라스 신흥재벌보다 훨씬 깊다.
쌍룡의 김석원회장은 지난 75년 선대회장 김성곤씨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기업을 물려받았을 당시 『10년 동안 수습기간으로 알고 공부하겠다』고 취임사에서 밝혔었다. 그는 이 말을 증명해 보이기나 하듯 80년대 중반부터 일을 벌이기 시작한다. 83년 효성으로부터 증권회사를 인수하는 것을 시작으로 84년 서일종합건설, 86년 남광토건·동아자동차등을 잇달아 인수했고 87년에는 합작건설회사인 파슨즈퍼시셜 설립과 영국에 있는 펜더자동차 인수를 단행했다.
81년에 2세회장이 된 한국화약의 김승연회장 경우는 훨씬 빠른 템포였다.
취임한지 얼마 안되어 말썽많던 다우케미컬을 인수한 것을 비롯, 한양유통과 정아그룹(구명성)을 통째로 인수했는가 하면 단자회사(삼구기금)의 신설로 금융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최근 들어서는 베어링을 생산하는 한국정밀과 한국자동차부품을 잇달아 세워 기계공업 쪽으로 진출을 도모하고 있다.
독점기업이라는 불명예가 늘 따라다녔던 한국화약이 이젠 독점품목인 산업용 다이너마이트의 매출액(3백억원가량)은 전체그룹 매출액 3조원의 1%에 불과할 정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동부그룹의 김준기회장 역시 80년대에 들어오면서 확장공세에 돌입, 중반부터 가속을 붙이기 시작한다. 80년 미몬산토사와 실리콘웨이퍼 합작공장을 설립하는 것으로 탈건설(미륭건설)을 선언하더니 82년 국민투금 신설, 83년 자동차보험 인수, 84년 동부제강(구일신제강)인수, 86년 울산석유화학 인수, 88년 영남화학 인수등 잇달아 대어를 낚아 올려 주위를 놀라게 했다.
최근 국내 보험시장이 개방되자 미애트너사와의 합작파트너로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참이다.
이제 동부그룹을 거론하면서 미륭건설이나 동부고속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어느새 거대한 기업군으로 성장해버렸다.
금융폭만 해도 자동차보험·단자회사·상호신용금고등으로 기본 틀을 갖추었고 영남화학과 동부석유화학으로 석유화학분야에 본적 진출했으며 동부제강 인수로 철강업계에까지 사업영역을 확대시켜온 것이다.
한일합섬의 경우 이들과 좀 다르다. 원래 내실위주의 보수적 경영체질로 일관해온 탓으로 업종 다변화나 외형 신장면에서 다른데 비해 뒤져온 게 사실이었으나 본의 아니게 도산한 국제그룹을 인수하면서 하루아침에 재계의 큰 별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또 하나의 중견그룹으로 제2민항을 따낸 금호그룹을 빼놓을 수 없다. 70년대 후반 이후 전자산업에 발을 디뎠다가 혼이 난 것을 비롯, 몇 차례 어려움을 겪기도 했던 금호는 80년대 중반부터 호전되기 시작, 급속성장 궤도에 진입한다. 금호그룹의 지난해 매출액은 7개 계열기업을 모두 합쳐 7천억원. 이제 제2민항(서울항공) 하나만해도 얼마 안있어 이 정도의 매출은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들 중견그룹들의 뉴 비즈니스에 대한 의욕은 대단하다.
쌍룡의 경우 모체기업인 시멘트부문을 신소재(세라믹)로 발전시켜 나가는가하면 최근의 동아자동차와 펜더자동차 인수를 계기로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기계공업분야에 본격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김석원회장 자신이 대단한 자동차 애호가로 그룹의 총력을 여기에 기울일 참이다.
인수한 동아자동차를 제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그룹의 핵심인사들을 이미 주요 포스트마다 꼽아놓고 열을 올리고 있다. 기존 3사와의 경쟁을 피해 일반승용차보다 스포츠카 부문으로 진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아무튼 이들 중견그룹의 잠재력은 한계를 측정하기가 어렵다. 분명한 것은 90년대 재계판도 변화는 이들의 방향에 크게 좌우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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