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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선거 이대로 좋은가 (기자방담) - "돈으로 표못산다" 좋은 교훈 남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17년만에 부활된 소선거구제 총선이 끝났읍니다. 사상 유례없는 금품·폭력·흑색선전이 난무한 「타락선거전」으로 지적되었읍니다만 나타난 결과는 그같은 방식으론 결코 표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선거혁명」같기도 합니다. 역사적인 13대총선 현장취재뒷얘기를 총정리 해보죠.
-이번 「지역당」출현에는 지난번 대선때 「확실히 밀어주지 못했다」는 유권자들의 자연스런 부담감을 각후보자들이 이용해 상승작용을 일으켰다는 느낌도 듭니다.
충남지역의 경우 거의 모든 공화후보들은 『우리도「멍청도」소리 안들으려면 뭉쳐야한다』『전라도사람들이 김대중씨를 중심으로 뭉치니까 서해안시대니 뭐니해서 이지역이 개발되고 있지 않느냐』는 식으로 그동안 지역감정에 비교적 덜 오염돼 있던 이 지역의 감정을 부추겼고 결과적으로 주효했지요.
-전라도 쪽에서는 무소속 후보들조차 『김대중선생이 지지를 약속했다』『당선되면 평민당에 입당하겠다』는 등의 발언을 하면서 한표를 호소하는 상황이었읍니다. 김대중씨는 호남에서 하나의 상징이라는 느낌이었어요. 누가 그렇게 만들었느냐 하면 역대정권이지요. 결국 자업자득인 셈임니다.
금품살포도 홍수였지요. 지역을 막론하고 막판에 이르러 현금을 마구 뿌려댔읍니다.
-본지 23일자(일부지방 24일자) 10면에 어느 후보가 돈을 뿌리는 현장을 잡아 생생하게 보도했는데도 바로 그날 밤 그 지역에서 돈을 뿌리다가 운동원들끼리 충돌을 빚기도 했읍니다.
-민정당 권중동후보의 현금봉투 우송사건은 금권타락선거의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봉투안에서 나온 현금만 9천만원에 달했으니 전체적으로 뿌린 돈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권후보는 낙선했지만 당선자와의 표차가 1천4백4표밖에 나지않아 재수없게(?) 들키지만 않았다면 당선은 떼어논 당상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이 사건은 선거자금의 유출을 막기위한 아이디어였다는 얘기가 있읍니다.
중앙에서 선거자금이 배포되면 중간과정에서 많이 새어나가 실제로 유권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얼마되지않자 가장 확실한 우편을 이용하자는 발상을 했다는 겁니다.
-돈을 많이 쓴 후보치고 당선된 사람이 거의없는 것도 이번 선거의 한 특징입니다.
결국 돈으로 표를 사려던 후보는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고 명예에도 먹칠을 한 셈이지요. 일부 지역에서는 그 지역 출신의 기업인들이 민정당 공천을 받아 출마했으나, 대부분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회사의 이미지까지 떨어뜨렸읍니다. 전북 이리의 쌍방울(공천섭후보), 정주-정읍의 미원(임철수후보)등이 그대표적 예입니다.
금권선거와 관련, 각지역에 돈을 무차별 살포한 후보들의 성을 바꿔 「돈××이라는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들리더군요.
부산지역의 모후보, 충남지역의 모후보는 각각 「돈××」로 현지에선 통하고있는데 부끄러운 줄 알아야죠.
-선물공세중 가장 인구에 회자된 사건은 역시 종로선거구에서의 수건 돌리던 통장이 사망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읍니다.
-그후보측에선 이사건이 일어난 다음날도 창신국교에 지역구민 2천여명을 불러 모아 선물공세를 폈지요. 이 과정을 취재하던 사진기자의 필름을 빼앗고 기자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정문을 폐쇄, 선물을 타러오는 주민들과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읍니다.
-금품과 선명바람의 대결도 관심을 모았읍니다. 대부분 금품이 선명바람 또는 지역바람에 날아가 버려 이젠 국민들이 「주는 건 먹고 안 찍는」 수준까지 온 느낌입니다. 「안먹고 찍는」참다운 선거풍토가 아쉬웠던 대목이기도 합니다만 「돈을 쓰면 진다」는 참으로 값비싼 교훈도 남겼지요.
-폭력도 이번 선거전의 또하나 특징이었지요.
곳곳에서 폭력이 난무하고 운동원들이 피를 흘리는 모습을 지켜본 많은 시민들사이에 『이런 식으로라면 선거가 꼭 필요한 건가』하는 원천적 「민주주의 회의론」까지 등장할 정도였으니까요.
-상호인신공격·매터도도 그어느때보다 심각했읍니다. 「사쿠라」「변절자」등은 약과이고 「×새끼」「××놈」등 상식을 초월한 극언까지 유세장을 뒤덮었읍니다.
-이런 생경하고 저질스런 말을 구사한 대부분의 후보는 지지기반이 약한 점을 만회하려고 「언어의 폭력」에 의존했다는 인상입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이런 후보들에겐 표로써 심판을 내렸읍니다. 충남 모지역 모후보는 「개××」「미친동물」등 욕설을 해댔지만 결국 보기좋게 낙선했지요.
-야당의 부정선거 감시활동도 활발하고 조직적 이었다는 점이예요.
전화제보도 많아 본사의 경우 선거이틀전부터 전화가 불이날 정도였고 특히 현장적발 건수가 많아 제보의 정확도도 높았읍니다.
-서울동대문을에서 민정당 금품살포를 평민당측이 현장에서 적발해 조사한 것이나 안동지역에서 권중동후보측의 금품살포를 우체국에서 민주당측이 적발한 사건이 대표적인 예였어요. 민주당측은 우체국직원으로부터 제보를 받아「인사차」명목으로 아침일찍 우체국에 가 봉투를 적발해 냈다고 하더군요.
-전반적인 선거전분위기가 혼탁한만큼 일부 깨끗한 선거전이 더욱 돋보였고 기대를 갖게했읍니다.
-서울의 중량·갑을 지역이 그중에도 모범적이었지요. 다른 유세장의 험악한 분위기와는 달리 인신공격·상호비방·야유 또는 피킷등 불법선전물을 거의 볼수 없었는데 이는 각 후보측 운동원들 사이의 신사협정 때문이었다고해요.
유세장에서 각 후보들은 연설이 끝난 뒤 서로 손을 잡고 『경청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도해 청중들을 흐뭇하게 했읍니다. 모두에게 박수가 쏟아지더군요.
-강남을에서 낙선한 무소속 홍사덕후보도 「선거법대로」선거운동을 한 모범사례로 꼽혔읍니다. 벽보·현수막·호별방문등 법에 규정된 내용을 그대로 지켰어요. 비록 떨어지기는 했지만 선명한 인상을 남겼어요. 무소속 서명파의원들이 대체로 깨끗한 선거운동으로 이미지를 심으려는 작전이었어요.
-그런 예외가 없는건 아닙니다만 선거법은 이번 선거전에서 있으나마나 였읍니다. 여야할것 없이 대부분 후보들이 모두 선거법위반자예요.
새국회에서 우선적으로 다루어야할 과제의 하나가 선거법이라고 봅니다. 현실에 안맞는 규정들은 과감히 고치고 고친 다음엔 철저히 지켜지도록 법집행을 해야합니다.
-투·개표과정은 일부에서의 마찰에도 불구, 역대선거중 가장 공명했다는게 일반적인 지적입니다.
선거가 끝나면 으례 여야가 부정선거다, 아니다로 일대 설전을 펼쳐온게 지금까지의 관행이었읍니다만 이번선거에선 일부 지역구를 제외하곤 지금까지 비교적 조용합니다.
-이제 선거는 끝났읍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이제부터 할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망국의 지역감정, 황금만능주의, 수단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그릇된 사고방식 등을 치유하는데 모두 앞장서야 합니다.
고생많았읍니다. 얼굴들이 모두 검게 그을린 것을 보니 이번 여름휴가는 반납해도 되겠군요.(일동 웃음) <정리=유재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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