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한 그루 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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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나희덕(1966~ ) '한 그루 의자'부분

태어나서 한번도 두 발로 걸어보지 못했다
다리가 넷이라는 것이 불행의 이유가 될 수도 있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는 앉아 있다
그가 누구를 앉힐 수 있는 것은
가만히 앉아 있는 일을 누구보다 잘하기 때문,
그는 앉은 채 눕고 앉은 채 걷는다
혹은 앉은 채 훨훨 날고 있을 때도 있다
그를 오래 보고 있으면
조금씩 피가 식고 눈은 밝아져
그가 입을 열 때까지 하냥 기다릴 수도 있다
스물 여섯 도막의 통나무가 한그루 의자가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못에 찔려야 했는지,
그 굳어가는 팔다리 속에 잉잉거리는 게 무엇인지,
그러나 말해주지 않아도 나는 알 것만 같다


의자가 누구를 앉힐 수 있는 것은, 앉아 있는 일을 잘 하기 때문이란다. 그런 의자를 보고 있으면 눈이 밝아지고 편안해진다. 그러나 그런 의자가 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못에 찔려 아팠는지 모른다. 많이 아파본 사람은 누구도 자기 몸에 앉힐 수 있다. 겸손하게 자기 몸을 굽힐 수 있다.

마종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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