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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우석칼럼

총리가 가져야 할 세 친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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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본 총리로서 큰 업적을 남긴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서 총리는 세 사람의 친구가 꼭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총리를 둘러싼 많은 정치인과 관료 외에 결정적일 때 도와줄 마음의 친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은 높은 경지의 종교인, 한 사람은 견식 있는 언론인, 마지막 한 사람은 고명한 의사를 꼽았다.

이케다 총리도 장관 시절엔 구설수가 많았다. 국회 질의답변에서 "가난한 사람은 보리밥을 먹어라" "영세기업이 도산하고 중소기업가가 자살해도 할 수 없다" 등의 실언으로 국회 불신임 결의를 받기도 했다. 나중 그 실언들은 거두절미한 과장 보도로 드러났지만 그는 신문과 싸우지 않았다. 마음을 다져먹고 저자세로 노력한 끝에 7년 뒤 총리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총리가 되자마자 '관용과 인내'의 기치를 내걸고 적대세력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했다. 이케다는 술과 골프를 매우 좋아했으나 총리가 되자마자 재직 중엔 요정에도 안 가고 골프도 안 치겠다고 선언하고 그 약속을 지켰다. 콧대 높은 재무 관료 출신의 엘리트였지만 서민적이고 친근한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런 변신에는 세 부류 친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다. 우선 고명한 종교인을 통해 일상의 번잡함에서 한 걸음 물러나 세상을 관조하고 사심 없이 일처리를 할 수 있는 마음을 얻었다 한다. 사실 이케다는 청년 시절 난치병에 걸려 붕대를 온몸에 감고 5년여 동안 모친과 함께 전국 사찰을 순례한 적이 있다. 이때 인내를 배우고 잠재력을 키운 것으로 짐작된다. 이케다는 그 바쁜 와중에도 일상적 생활리듬과 평상심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다음은 견식 있는 언론인을 통해 관청 보고와는 다른 광범한 여론을 듣고 기민하게 대응했다. 총리 취임 후 얼마 안 돼 여야 공개토론회에서 사회당 당수가 우익청년의 칼에 맞아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그 자리엔 총리도 있었다. 일본 전체가 술렁대고 내각도 큰 위기를 맞았다. 이때 발 빠르게 대처했다. 닷새 후 소집된 임시국회 모두(冒頭)연설에서 눈물겹게 고인을 기리고 애도했다. 추모사가 얼마나 애절했던지 사회당 의원들도 눈물을 흘리고 국민도 감격했다. 들끓던 여론도 가라앉았다. 그것은 언론인 출신 총리 보좌관의 작품이었다. 그 보좌관은 맹목적 충성이 아니라 견식 있게 보좌함으로써 총리의 직선적 성격을 많이 커버했다. 안 좋은 정보도 꼭 전달하고 직언을 많이 했다.

마지막으로 좋은 의사를 통해 좋은 건강 상태를 유지했다. 총리 자리는 격무다. 건강하지 않으면 바른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이케다는 주말엔 반드시 휴양지에 가서 좋은 사람들과 같이 쉬면서 보냈다. 의사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물러날 때였다. 총리에게 암 징후가 보이자 의사는 사퇴를 권고했고 총리는 마음의 준비를 한다. 마침 그때가 도쿄 올림픽 직전이어서 개회식에만 참석하고 깨끗이 물러났다. 사람은 보통 죽기 3년 전부터 화도 잘 내고 무리한 욕심을 내거나 엉뚱한 짓을 한다고 한다. 뇌나 몸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인데 이 징후를 빨리 알아 중요한 일에서 손을 떼게 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케다는 좋은 친구 때문에 소득배증계획의 성공 등 일도 잘했고 마무리도 잘했다.

한국은 일도 복잡하고 관료 조직도 미흡해 총리에겐 더 좋은 친구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요즘 총리 하마평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좋은 친구가 있는지, 주로 누구하고 노는지 한번 점검해 보는 것이 좋겠다.

최우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