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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암호화폐와 편도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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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공포의 감정을 관장하는 기관은 양쪽 귀 안쪽 대뇌 부위에 위치한 편도체다. 외부 위협이 느껴지면 흥분한 편도체가 뇌의 다른 부분에 공포감을 전달해 뇌 소유자가 방어 혹은 회피를 선택하게 한다. 편도체가 손상된 쥐는 고양이 앞에서도 도망가지 않는다.

행동경제학자들이 각종 실험을 통해 증명한 인간의 ‘손실 회피 편향’도 편도체의 작용 때문이다. 같은 금액이라도 얻을 때의 즐거움보다는 잃을 때의 고통을 더 크게 느끼는 심리다. 2005년 미국 3개 대학의 합동연구팀은 일반인과 편도체 손상 환자들을 대상으로 동전 던지기 실험을 했다. 잃을 때는 1달러, 딸 때는 2.5달러 식으로 기대 손실보다 기대 수익이 더 크도록 설계했다. 결과는 환자군의 압승. 일반인은 어느 정도 돈을 따자 그 돈을 지키기 위해 내기를 멈췄지만, 환자들은 그런 손실 회피 성향을 보이지 않았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암호화폐 가격이 추락하면서 ‘코이너’(암호화폐 투자자)의 공포심도 커지고 있다. 뒤늦게 뛰어든 ‘코리니’(코인 투자 초보자)들의 낭패감은 말할 것도 없지만, 선배 투자자들의 고통도 못잖다. 투자 시작 때가 아니라 불과 한 달 전 정점 때의 수익과 비교하며 상실감에 빠진다. 지금도 바닥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편도체를 흥분시킨다.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했던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모든 버블의 어머니 비트코인이 마침내 무너지고 있으며 그 끝도 알 수 없다”며 겁을 준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의 암호화폐 시장은 편도체의 인내를 시험하는 미지의 심연 같다. 가격이 오를 때는 장밋빛 일색이더니 흐름이 꺾이자 정체 모를 괴물들이 꿈틀댄다. 미국에서는 달러와 1대 1로 연동돼 있다던 ‘테더코인’이 사기극일 가능성이 짙어졌다. 한국도 그러더니 일본에서도 거래소 해킹이 터졌다. 감시의 눈이 없는 시장에서는 개미를 터는 큰손이나 마약·테러집단 같은 어둠의 세력이 장난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주식시장처럼 제도권의 옷을 입고 싶은데, 기존 금융 권력은 곁을 내줄 생각이 별로 없다. 미래 화폐로서 가능성이 무한하다지만 딱히 손에 잡히는 비즈니스는 아직 없다.

편도체는 포유류 뇌 속의 생존 경보기다. 그러나 과잉 활성화되면 인간 이성을 관장하는 뇌 영역인 전두엽이 통제권을 잃게 되는 ‘편도체 납치’ 현상이 벌어진다. 개인은 불행해지고, 사회는 불안해진다. 오늘도 공포 가득한 미지의 바다를 항해하는 코이너들의 편도체가 건강하시기를.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