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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권한 축소 외면한 여당 개헌안 … 야당 “분권 의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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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2일 민주당이 개헌 당론을 발표하면서 ‘대통령 권한 분산’에 대해 소극적 자세를 보여 야당이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야당과의 향후 협상을 위해 다소 여지는 남겨놨지만, 새 권력모델은 사실상 ‘대통령 4년 중임제’로 기운 상태다. 4년 중임제에선 현행 5년 단임제보다 오히려 대통령 임기가 늘어날 수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 “한국 현실에서 4년 중임제는 8년 단임제나 마찬가지”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4년 중임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에선 대통령의 독주를 막기 위해 다양한 견제 장치를 심어놨다. 대표적인게 정부의 법안제출권 폐지다. 정부도 독자적으로 법안을 낼 수 있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선 의회만 법안 제출권을 갖고 있다. 때문에 학계에선 우리가 ‘4년 중임제’로 가려면 정부의 법안제출권 폐지를 패키지로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대통령 4년 중임제’로 기울자 비판 #한국당 “제왕적 대통령제 바꿔야” #국민의당 “임기만 늘리려는 속임수” #민주당 “야당도 자기 입장 내놔라”

하지만 2일 강훈식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정부의 법안제출권 폐지와 유지는 의견이 팽팽했다”며 “그래서 유지는 하돼 좀 제한하자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고 밝혔다. 감사원을 대통령 직속에서 국회 소관으로 이전하는 문제에 대해서 민주당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또 대법원장·중앙선관위원장·감사원장 등에 대한 대통령의 인사권을 축소하는 방안도 당초 추진하기로 했다가 슬그머니 ‘재검토’로 물러섰다.

야당은 민주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 집권한 뒤 말을 바꿨다고 비난했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그동안 (민주당이) 그토록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했던 것이 결국 집권 세력에 대한 발목잡기용 정치투쟁에 불과했음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김철근 대변인도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하려는게 아니라 대통령 임기만 연장하면서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국회 헌법개정특위 민주당 간사인 이인영 의원은 4일 기자간담회에서 “야당이 앙꼬(팥소의 일본말)도 없고 찐빵도 없이 비난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같은 특위의 한국당 간사인 주광덕 의원이 최근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분산하는 것이 개헌의 핵심이며 이것이 없으면 앙꼬 없는 찐빵”이라고 말한 것을 빗댄 것이다.

이 의원은 “야당도 자기 입장을 정리해서 내놓아야 한다”며 “민주당의 당론은 사실상 대통령 4년 중임제, 의회와 지방으로 권력 분산, 3권 분립에 근거한 견제와 균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민주당의 개헌안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막기 위한 충분한 분권이 아니다”라며 “최순실 사태가 불거졌을 때 민주당에서도 책임총리제를 주장한 것처럼 국회에서 총리를 선출하고 총리가 일정한 몫을 대통령의 의지에 구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정도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책임총리제 도입도 여권에선 부정적 기류가 우세한 사안이다.

국회 주변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신년기자회견에서 “개인적으로는 대통령 4년 중임제가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게 여당의 ‘가이드 라인’이 됐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여권 관계자는 “민주당에서도 다선 의원들은 개인적으로 분권형 개헌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지만 지금 집권 초반이라 누가 대통령의 뜻에 거스르는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낼 수 있겠냐”고 말했다. 이미 민주당 개헌안의 이념 노선을 놓고 이념적 충돌이 생긴데 이어, 권력구조 개편에 대해서도 여야간 현격한 시각차가 드러나 향후 개헌 협상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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