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형제복지원 사건은 국가 책임” 특별법 촉구 나선 김용원 변호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김용원 변호사. [사진 법무법인 한별 제공]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김용원 변호사. [사진 법무법인 한별 제공]

울산에서 부산 방향 도로 한 쪽에 있는 울주군 청량면의 한 초등학교. 산 아래 있어 공기가 좋기로 유명하다. 30여 년 전만 해도 이곳은 형제복지원의 강제 노역 현장인 반정목장이었다. ‘한국판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라고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의 인권 실상이 밝혀진 시작점이기도 하다.

1987년 당시 사건 담당 검사 #“외압으로 수용자 조사 못해, #진상규명해 피해자 보상해야”

1986년 12월 21일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현 울산지검) 검사였던 김용원(63) 변호사(법무법인 한별 대표변호사)는 지인과 산에 꿩 사냥을 나갔다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땅을 일구거나 돌을 깨는 노동자들을 몽둥이 든 경비원들이 감시하는 모습이었다. 큰 셰퍼드 두 마리가 작업장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지인이 “일하다 도망가면 반쯤 죽여놓는다더라”고 전했다. 중범죄임을 직감한 김 변호사는 바로 내사에 착수, 이듬해 1월 16일 부랑인 수용소인 부산 형제복지원을 압수수색했다.

부산 형제복지원 수용자들을 강제 노역시켜 운전교습장을 지으려고 한 울산 울주군 반정목장 진입로. [중앙포토]

부산 형제복지원 수용자들을 강제 노역시켜 운전교습장을 지으려고 한 울산 울주군 반정목장 진입로. [중앙포토]

옛 반정목장 터의 현재 모습. 노역장이 있던 곳에 초등학교가 들어섰다. 최은경 기자

옛 반정목장 터의 현재 모습. 노역장이 있던 곳에 초등학교가 들어섰다. 최은경 기자

75년부터 12년 동안 3000명 넘는 수용자를 감금·폭행·성폭행하고 당시 기준 12억원의 국가 보조금을 횡령한 형제복지원 사건은 그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확인된 사망자만 551명이다. 김 변호사는 87년 1월 17일 박인근(2016년 사망) 형제복지원 원장과 직원들을 업무상 횡령, (울산 작업장에 대한) 특수감금 등으로 구속했다. 박 원장은 1심에서 징역 10년을 받았다가 2심 등 7번의 재판을 거치며 최종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31년 후인 올해 1월 17일, 김 변호사는 형제복지원 대책위원회와 함께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대검찰청 앞에 섰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 규명을 위한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오는 8일에는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주최하는 포럼 ‘또 하나의 1987 형제복지원을 생각한다’에 토론자로 참석할 예정이다.

2016년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 규명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1992년 검찰에서 나와 오랜 시간 형제복지원 진상 규명을 주장해온 그를 1월 17일, 25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이상복 당시 부산지검 울산지청(현 울산지검) 수사계장이 반정목장 수용소가 있던 곳을 가리키고 있다. 최은경 기자

이상복 당시 부산지검 울산지청(현 울산지검) 수사계장이 반정목장 수용소가 있던 곳을 가리키고 있다. 최은경 기자

당시 수사 과정은. 
울주작업장(반정목장)에 180명 정도 수용돼 있었다. 1월 16일 이상복 검찰 수사계장과 형사들을 보내 전원 울산지청에 데려오게 하고 나는 형사들과 부산 형제복지원에 갔다. 아무리 전두환 정권이라도 이렇게 야만적인 인권 유린이 있을 수 있나 싶었다. 가족에게 통보도 하지 않고 길에서 사람을 강제로 잡아갔다. 남자·여자·어린아이 할 것 없었다. 감금시설에 가둔 채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고 구타를 일삼으며 강제 노역을 시켰다. 울산의 180명을 조사한 뒤 부산 본원에 있던 3000명을 조사하려 했는데 당시 부산지검장이 조사를 못 하게 했다. 수사 외압이다. 그 외에도 박 원장의 횡령 액수를 축소하라는 등 여러 외압이 들어왔다. 피해자 조사를 못 해 부산 본원의 특수감금 혐의는 적용하지도 못했다.
그때 못한 재수사를 하자는 얘기인가.
재수사는 못 한다. 민사상 손해배상 소멸 시효, 형사상 공소 시효 모두 지났다. 재수사가 아니라 진상 조사다. 이건 민간 시설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니다. 내무부 훈령 410호라는 것에 따라 만들어지고 운영된 시설이다. 내무부 훈령 ‘따위’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을 몇 년씩 감금하는 그런 훈령 따위는 위헌이라고 말할 가치도 없다. 국가가 운영비 전액을 부담했고 관리·감독했다. 국가라고 말하기 창피하다. 그곳에서 벌어진 폭행·사망 사건에 국가의 책임이 있다. 특별법을 제정해 수용자가 언제, 어떤 이유로, 어떻게 인권 유린을 당했는지 밝히고 최소한 금전적 보상이라도 해야 한다는 얘기다.
1980년대 부산 형제복지원 모습. [중앙포토]

1980년대 부산 형제복지원 모습. [중앙포토]

과거 인터뷰에서 수용자의 90%가 부랑인이 아니라고 했는데 근거는.
밖에 두면 혼자 생존하기 어려운 사람을 부랑인이라고 본다면 형제복지원 수용자의 10% 정도만 그 개념에 부합했다. 조사하며 관찰했을 때 그랬다. 울산 반정목장 수용자 180여 명은 다 조사했는데 100% 건강하고 혼자 생활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당시 아무도 배상을 받지 못했나.
민사 소송 낸 사람도 없었다. 권위주의 정권 시대였다.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사람들을 석방하긴 했지만 조직화하지 못했다. 이 사람들을 위해 움직이는 단체가 없었다.
이 시점 다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이유는.
국회에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을 개정하는 방향을 논의하고는 있는데 국회의원들이 절박함을 못 느껴서인지 입법 진행 속도가 지지부진하다. 품위 있는 민주 국가를 지향한다면 하루도 늦출 수 없는 문제다. 대한민국 지성인이라는 사람들도 ‘과거에 있었던 일을 어떻게 다 살펴보느냐’는 식으로 지나친다. 지성이 마비된 나라다. 같은 87년에 있었던 박종철 사건은 큰일이고 시민 수백명이 죽은 것은 눈 감아도 되나. 이런 법률을 안 만드는 사람들이 국민을 위해서 뭘 한다는 건가.
형제복지원 관련 법안이 이번 정부에서 통과할 거라 보나.
그럴 거라 보지만 국회의원들이 인권 유린 문제에 좀 더 관심을 둬야 한다. 
1987년 부산지검 울산지청(현 울산지검) 검사로 형제복지원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김용원 변호사가 1월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당시 수사에 외압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7년 부산지검 울산지청(현 울산지검) 검사로 형제복지원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김용원 변호사가 1월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당시 수사에 외압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랜 시간 특별법 제정을 위해 앞장서 왔다. 개인적 이유가 있나.
(목소리가 커지며) 형제복지원에 4000명 가까이 수용돼 있었고 전국에 비슷한 시설이 많았다. 다 하면 몇만 명 될 거다. 수용자 외에 형제복지원 안에서 일어난 인권 유린 실상을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다. 담당 검사로서 책임을 느낀다. 가벼운 인권 유린이 아니다. 불법 감금만으로도 큰일인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맞아 죽기도 하고 병에 걸려 죽기도 했다. 말할 수 없이 잔인한 한국판 홀로코스트다. 사망 진단서를 보면 사인이 하나같이 뇌졸중·심부전증이다. 우리나라가 인권 선진국이 되려면 국가가 과거에 저지른 폭압적 행위를 반성하는 단계부터 거쳐야 한다.
검사 출신으로 최근 검찰 개혁은 어떻게 보나.
검찰이 검찰권을 남용해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거다. 검찰 권한 조정, 분산·재배치해야 하는 것은 맞다. 다만 개악이 아닌 개선이 되려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울산=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