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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마차를 말 앞에 둘 수 없다’는 경제학자들의 쓴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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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일자리라는 마차는 경제성장이라는 말이 끄는 결과이기 때문에 마차를 말 앞에 둘 수 없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가 1일 강원대에서 열린 ‘2018 경제학 공동 학술대회’에서 한 말이다. 소득과 일자리는 경제성장의 결과이지, 성장을 가져오는 요인이 아니라는 지적은 경제학계에서 많이 나왔지만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을 설계한 진보 학자인 이 교수의 발표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이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론 자체는 지지하면서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덜기 위해 지원하는 일자리 안정자금에는 비판적이었다. 소득 주도 성장론을 옹호해 온 주상영 건국대 교수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관련해선 최저임금 1만원 목표가 경제에 불필요한 충격을 줄 수 있다며 속도조절론을 제시했다. 주 교수는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의 거시경제분과 의장이다.

주류 경제학계의 비판도 이어졌다. 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는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감축 등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강화하는 정책은 노동 투입을 감소시켜 자본생산성을 떨어뜨리고 결국 일본식 경제 침체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노동 생산성 향상을 위한 규제 혁파와 노동·교육 시스템 개혁을 말하지 않는 것은 책임 회피”라고 비판했다.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이 내부 지향적인 분배에만 치중하고 자본 축적과 소득 창출을 등한시하면 중장기 성장 능력이 훼손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선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비롯한 소득 주도 성장을 밀어붙여 온 정부는 이제 위험한 독주(獨走)를 멈추고 경제학계의 쓴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시장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무리한 정책들도 경제 원칙에 맞게 다시 손질해야 한다. “청와대 참모진이 너무 경제를 가벼이 보고 있다”는 학계의 평가를 무겁게 곱씹어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