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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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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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송길영 Mind Miner

송길영 Mind Miner

스타트업의 요람 같은 포럼에 다녀왔습니다. 지금 막 시작한 창업가들이 짧은 몇 분의 시간 동안 각자의 사업모델을 알리며 함께 하고픈 동료를, 때로는 고객을, 그리고 운이 아주 좋다면 투자자를 만날 수 있는 모임으로 벌써 10년이 되어갑니다. 먼저 들어온 선배들이 앞에 자리 잡고 성장배경 같은 것을 물어볼라치면 준비된 모범 답안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해야 하는 입사 면접 같은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내가 만든 가치가 무엇인지 당차게 주장하는 모습을 보면 언제나 작은 흥분이 느껴집니다.

2012년과 2016년에 이어 세 번째 같은 곳에 가 보니 그사이 눈에 띄게 변화한 것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만 가득하던 공간에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꽤 많이 보이는 것입니다. 창업이란 말 앞에 청년이란 단어가 접두사처럼 익숙하게 붙여지는 세상에서 중년 혹은 장년의 느낌이 묻어나는 분들이 적지 않은 비율로 함께 한 모습은, 또래끼리 모임이 익숙하고 접촉사고 현장에서도 다툼이 나면 “너 몇살이야?”를 외치는 한국사회에서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빅 데이터 2/2

빅 데이터 2/2

엔젤 투자자일 수도 있고 인공지능과 자동화의 바람에 밀려나 두 번째 인생을 준비하는 예비 창업자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저 젊은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마을 도서관보다는 더 생동감 있는 장소에 그냥 오셨을 수도 있지요. 어쨌든 모습과 연령, 배경과 현실이 다 다를지라도 ‘오롯이 혼자’ 온 분들이 모여 함께 하는 모습은 나쁘지 않은 그림이 되었습니다.

벤처로 부를 이룬 후 투자자로 혹은 조언자로 역할을 하기 위해 배낭 하나 메고 사람들을 만나는 이들을 요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기사가 모는 검고 큰 차의 뒷자리에서 내리면 가방을 들어주는 비서가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공간으로 모시는 ‘성공한 사업가’의 모습은 이제 드라마 속 클리셰처럼 진부합니다.

부와 경험을 얻었을지라도 홀로 훌쩍 다니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여 굳이 소탈하다고 말할 필요도 없는, 그리고 부를 이루지 못했고 다양한 경험을 미처 하지 못한 채 나이가 들었어도 다시금 홀로 낯선 이들과 만나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세칭 ‘계급장 떼고 사람끼리 만나는 사회’가 이제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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