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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도 국세청도 대기업 공익재단 겨눈다

중앙일보

입력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은 기업이 두려워하는 대표적인 국가기관이다. 이 두 곳이 대기업 소유의 공익재단을 겨누고 있다. 공익재단이 본래 설립 취지를 잃고 총수 일가의 경영권 유지와 편법 승계에 악용되고 있는지 샅샅이 파헤쳐보겠다는 것이다.

공정위, 171개 상증세법상 공익법인 대상 조사 착수 #총수 일가의 편법 지배력 확대 수단으로 사용되는지 여부 살펴 #공익목적 사용 현황, 특수관계인과 내부거래 비중 등 조사 #국세청도 "대기업 계열 공익법인 편법 운영 차단" #일반 법인과 다른 별도 정기조사 선정기준 마련 검토 #

시작은 공정위가 했다. 지난해 11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5대 그룹 CEO(전문 경영인)와 만난 자리에서 “기업의 자발적인 개혁 의지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이 남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며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재단의 운영 실태를 전수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요 기업 공익법인 현황

주요 기업 공익법인 현황

공정위는 이후 지난해 12월 20일부터 57개 공시대상기업집단을 대상으로 소속 비영리법인의 상·증세법상 공익법인 해당 여부, 특수관계인 현황 등 1단계 조사를 했다. 이를 토대로 공정위는 상·증세법상 공익법인만을 대상으로 2단계 조사에 착수한다고 31일 밝혔다. 51개 기업집단 소속 171개 법인이 대상이다. 1단계 조사가 기초 조사 수준이었다면 2단계 조사는 세제 혜택을 받는 공익법인이 설립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본격적으로 살핀다.

이를 위해 조사 대상 법인에 ^출연받은 재산내역 ^수입ㆍ지출 개요 ^출연받은 재산의 공익목적 사용현황 ^공익법인 보유 주식 지분의 의결권 행사 현황 ^특수관계인과의 내부거래 비중(연도별 내부거래 총액 및 특수관계인 종류별 비중) 등의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

공정위는 오는 3월까지 자료를 받아 상반기 내에 이를 분석하고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 검토하기로 했다.

국세청도 곧 가세할 전망이다. 민간 전문가 10명을 포함해 19명으로 구성된 국세행정개혁 태스크포스(TF)는 최근 국세청에 “대기업 계열 공익법인에 대해 엄정한 검증을 실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TF는 권고 배경에 대해 “공익법인을 경영권 편법승계 수단으로 악용하거나, 출연 재산을 변칙사용하는 사례가 있어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공익법인에 대해선 세무조사 선정기준을 별도로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병구 국세행정개혁 TF 단장(인하대 경제학과 교수)은 “수입금액이 작은 공익법인이 정기 세무조사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도록 공익법인은 일반법인과 구분되는 별도의 조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공정위와 국세청이 대기업 소속 공익재단을 정조준한 건 공익재단이 당초 취지와 달리 세제 혜택을 누리면서 편법 경영 행위를 벌이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행법에 따라 대기업의 공익법인은 특정 기업의 총 주식을 5% 내에서 보유할 경우 상속ㆍ증여세를 내지 않는다. 5% 주식을 기부로 보는 것이다. 공익법인 비과세 혜택은 기부 활성화를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일부 대기업은 공익법인의 비과세 혜택을 계열사 우회 지배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중 20대 그룹, 40개 공익재단이 보유한 계열 상장사의 지분 가치는 무려 6조7000억원에 이른다. 재벌들이 공익재단을 통해 지배권을 강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공익법인이 보유한 특정 기업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법안들이 제출돼 있다. 재벌 총수 등과 특수 관계가 있는 공익법인이 관련 총수가 지배하는 회사의 국내 계열사 주식을 보유할 경우 의결권을 없애는 것이다. 공익법인이 가진 주식이 총수의 지배력 강화에 사용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재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부에 인색했던 문화를 바꾸고 대기업의 기부를 보편화한 순기능이 많은데, 기업의 편법적 지배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부정적인 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우려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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