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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비트코인 큰손들이 선전으로 원정 쇼핑 가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몇 명의 한국인이 상가에 들어선다. 중국인 직원들이 하나 둘 접근하기 시작한다. 별다른 중국어가 필요없다. 한글로 된 제품 리스트가 준비돼있기 때문이다. 흥정은 계산기 하나로 이뤄진다. 거래가 성사되고, 한국인 고객들이 유유히 상가를 떠난다.

유명 관광지의 기념품 매장이나, 한국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짝퉁시장이 아니다. 중국 선전시에 위치한 대형 전자 제품시장이다. 그리고 이들이 사고 파는 건 바로 암호화폐 채굴 장비. 한대 당 가격은 2만 3000위안 정도, 우리돈으로 약 400만원이다. 보통 한번 거래에 10대 이상이 판매된다.

화창베이 전자 시장의 비트코인 채굴 장비 판매 코너, 한국어 표지판이 눈에 띈다. [사진: 텐센트IT]

화창베이 전자 시장의 비트코인 채굴 장비 판매 코너, 한국어 표지판이 눈에 띈다. [사진: 텐센트IT]

화창베이 전자 시장. 중국 IT 제조업 중심지 선전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 부품 시장이다. 텐센트 IT 등 중국 미디어에 따르면 전세계 암호화폐 채굴기의 상당부분이 이곳에서 판매된다. 주말이면 중국은 물론 러시아, 인도, 한국, 일본 등에서 온 채굴업자들이 채굴 장비를 구입하기 위해 화창베이를 찾는다. 단일 장소로는 세계 최대 비트코인 채굴 장비 거래 시장이다.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채굴 장비는 중국 채굴 업체 비트 메인의 '엔트마이너 S9'이다. 가격은 2만 2000 위안~2만 7000 위안(약 350~450만원)에 따라 거래된다. 이 제품의 제조원가는 3000위안 정도(48 만원). 공식 판매가는 약 160만원 정도다.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치솟고 있다. 이 제품의 가격 추이가 최근 화창베이 상인들 사이에서의 최대 이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암호 화폐 채굴 장비 앤트마이너s9 [자료: 비트메인 홈페이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암호 화폐 채굴 장비 앤트마이너s9 [자료: 비트메인 홈페이지]

"채굴 장비 판매로 전환하는 상인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채굴 장비의 경우 다른 전자 부품과 달리 초기 사업을 위한 대출이 필요 없다. 100%로 선주문, 선입급으로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보통 주문 후 한달이 지난 후에 제품을 받을 수 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텐센트 IT는 화창베이의 한 채굴 장비 판매자를 인용, 이렇게 설명한다.

과거 비트코인을 채굴하기 위해서는 가정용 컴퓨터로도 가능했다. 그러나 비트코인 가격 상승과 함께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채굴에 뛰어들면서, 난이도도 크게 상승했다. 이에 높은 수준의 연산능력을 갖춘 ASIC(주문형 반도체) 기반의 전문 장비가 없이는 사실상 비트코인 채굴이 불가능한 상태다. 비트코인 채굴 기기의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이유다.

채굴 장비 유통 업자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서비스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얼마전까지는 단순히 채굴 장비만 유통하는 사업자들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제는 아예 판매한 채굴 장비를 위탁 운영까지하는 판매상도 등장했다. 이들은 채굴 시설을 운영하기에 적합한 지역을 찾아 채굴 인프라를 구축하고, 바이어들이 구입한 채굴 장비를 이곳에서 대신 운영해 준다. 위탁 운영 수수료는 전력 소비량 1키로와트시(kW·h) 당 5자오(약 80원)이다.

화창베이 전자 시장 [사진: 이매진 차이나]

화창베이 전자 시장 [사진: 이매진 차이나]

화창베이 판매상들이 가장 선호하는 고객은 외국인 바이어들이다. 중국 바이어들이 한번에 10개 정도의 채굴 장비를 구입하는 반면, 외국인들은 100개 이상씩 구입한다. 가격 흥정도 내국인에 비해 덜하다. 러시아, 인도, 한국, 일본 순으로 판매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는 게 텐센트 IT의 설명이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투자, 비트 코인 채굴, 관련 장비 제조에 이어, 비트 코인 채굴 기기 유통이 또 하나의 폭리를 취할 수 있는 사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화창베이가 비트코인 채굴 장비 거래의 메카가 된 것은 전세계 비트코인 채굴 장비 생산의 80% 이상이 선전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비트코인 채굴업체인 비트메인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의 대표적인 비트코인 채굴 장비인 엔트 마이너 시리즈는 선전의 샤징(沙井)이란 지역에서 생산된다. 이 제품은 글로벌 보급형 채굴 장비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계 자산운용사 얼라이언스번스타인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암호화폐 투자 열풍과 함께 반도체 기업 TSMC 사의 ASIC 칩셋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이중 대부분이 비트메인 한 기업으로 흘러들어갔다.

이외에도 카난(Canaan), 이방커지 등 글로벌 5위권 안에 있는 중국 체굴 장비 제조업체들이 선전에서 생산에 나서고 있다.

이와 관련해 중국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는 "높은 가격 대 성능비가 중국산 채굴 장비의 인기 요인"이라며 "중국 내 컴퓨터 장비 및 부품의 최대 집산지로, 물류, 생산, 무역 등 체계적인 인프라를 갖춘 선전이 전세계 채굴 장비 생산의 중심이 된건 필연"이라고 설명한다.

차이나랩 이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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