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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영화] '브이 포 벤데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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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면

주연: 휴고 위빙.나탈리 포트먼
장르: SF스릴러.정치 드라마
홈페이지: (wwws.kr.warnerbros.com/vforvendetta)
등급: 15세 관람가

20자평: '매트릭스' 급에는 못 미치지만 흥미로운 정치 우화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가 돌아왔다. 물론 이번엔 감독 아닌 제작자로서다. 10일 전 세계에 동시 개봉하는 '브이 포 벤데타'는 워쇼스키의 이름값만으로 영화팬들을 설레게 한다. 원작은 1981년 앨런 무어의 동명 만화. 원작만화의 열성팬이었던 워쇼스키 형제가 '매트릭스' 이전부터 영화화를 꿈꿨던 작품이라는 점도 기대감을 한껏 높인다.

결론부터 말하자. '브이 포 벤데타'에는 '매트릭스'급의 충격과 강렬함은 없다. 현대영화는 물론이고 서구철학에도 일대 획을 그은 '매트릭스'의 계승자가 되기에는 너무 전형적이고 단순하다. 그러나 기대치를 조금 낮추면 영화는 충분히 흥미롭다.

미래 통제사회에 대한 경고와 자유의지에 대한 열망을 탄탄한 이야기로 풀어내 대중영화로서의 강점을 가진다. 영화의 어두운 색감과 비주얼은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를 살린다. 미디어의 통제와 부패한 권력의 관계, 폭탄테러 장면 등에서는 이 영화가 최근 할리우드를 사로잡고 있는 '포스트 9.11(9 .11 이후 미국의 오만함에 대한 자기 반성적 흐름)'의 맥을 잇고 있음도 보여준다.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미국이 빈국으로 전락하고 영국이 세계 최강국의 위치에 오른 2040년. 영국은 미디어를 장악한 소수의 정치가가 이끄는 전체주의 사회가 된다. 유일한 국영방송 BTN은 행복한 국가 이미지를 쏟아내고, 정권은 국민을 대상으로 바이러스 실험극을 펴면서 공포감을 조장한다. 조작된 공포감의 결과 국민들은 철권정치를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착한 국민으로 살아간다. 통금을 어겼다가 정권의 하수인인 핑거맨들에게 발각된 방송사 직원 이비(나탈리 포트먼). 그녀는 복면을 쓴 묘령의 사나이 V(휴고 위빙)의 도움으로 위험을 모면한다. 이비는 V의 형사재판소 폭파 테러를 목격하게 되고, 경찰의 추격을 받는다.

81년 영국에서 출판돼 인기를 끈 원작만화는 당시 '강한 영국'의 재건을 모토로 강력한 국가주의를 실행한 대처 정부에 대한 반발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극중 V가 쓰고 나온 '가이 포크스' 마스크는 1605년 왕정에 봉기를 들었다가 처형당한 실존 인물 가이 포크스에서 따온 것이다.

영화는 V를 절대영웅으로 치켜세우는 대신, 그의 행동 한편에 깔린 개인적 복수심을 부각한다. 개인적 복수심에 사로잡힌 테러리스트라는 다면적 설정으로 전형적 영웅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단순한 정치풍자 구도, 직선적 메시지는 스스로 매력을 반감시킨다. 미래통제사회에 대한 묘사가 전형성을 벗지 못하는 것도 약점이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말 먼저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2005년 7월 런던에서 극중 설정과 같은 연쇄 폭탄테러가 일어나는 바람에 개봉이 해를 넘겼다. 엔딩을 장식하는 국회의사당과 빅벤 폭파 장면은 정교한 미니어처 촬영 장면으로 현실감을 높였다.

'클로저' '스타워즈' 등으로 '레옹의 소녀'에서 벗어나고 있는 나탈리 포트먼이 삭발을 감행하며 분투했다. 나탈리 포트먼이 주황색 죄수복을 입고 삭발당하는 감옥 장면은 관타나모 수용소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 휴고 위빙이 시종 마스크를 쓰고 목소리와 동작만으로 내면을 드러내는 V역을 탁월하게 연기했다. 주인공이 마스크를 쓴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끝까지 가면을 벗지 않는 점도 특이하다. 제목 중 '벤데타(vendetta)'는 '피의 복수'라는 뜻.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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