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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넘은 그들, 천개 만개 상처로 빛나는 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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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스포츠 스타들 피와 땀의 흔적

스포츠 스타들 피와 땀의 흔적

‘한국 테니스 희망’ 정현(22·한국체대)의 ‘상처투성이 발’이 국민을 울렸다.

스포츠 스타들 피와 땀의 흔적

정현은 지난 26일 로저 페더러(스위스)와 호주오픈 준결승 2세트 도중 경기를 포기했다. 경기 후 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발을 공개했다. 오른발바닥은 물집이 터졌고 생살까지 드러났다. 정현은 “그나마 테이핑만 했던 왼발도 경기 후 오른발처럼 부상이 심해졌다”고 털어놨다.

정현은 호주오픈 4강에 오를 동안 단식 6경기, 복식 2경기를 치르면서 쉴새없이 뛰어다녔다. 그 결과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패인 상태다. [사진 JTBC]

정현은 호주오픈 4강에 오를 동안 단식 6경기, 복식 2경기를 치르면서 쉴새없이 뛰어다녔다. 그 결과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패인 상태다. [사진 JTBC]

테니스를 ‘피 흘리지 않는 복싱’이라고 한다. 그만큼 격렬하다. 정현은 지금 한여름인 뜨거운 호주에서 11일간 6경기, 총 777분을 뛰었다. 그가 한 대회에서 6경기를 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그의 발은 노박 조코비치와의 16강전부터 엉망이었다. 진통제를 맞으면서 버텼지만 더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 26일 맬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테니스 남자 단식 준결승전에서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를 맞아 경기에 집중하고 있는 정현. [EPA=연합뉴스]

지난 26일 맬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테니스 남자 단식 준결승전에서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를 맞아 경기에 집중하고 있는 정현. [EPA=연합뉴스]

정현의 발은 인터넷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네티즌들은 “한국인의 열정과 끈기를 보여주는 자랑스러운 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은승표 코리아정형외과 원장은 “테니스는 방향전환이 많은 종목이어서 발에 무리가 많이 생긴다. 상처가 나을 만하면 다시 경기해서 일부 피부가 없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정현은 1회전부터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일반인의 상상 이상의 충격이 축적됐다. 그의 발은 고통과 인내의 지표”라고 말했다.

발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많은 스포츠 스타들의 발은 발레리나 강수진(51·국립발레단 단장)의 그것처럼 뒤틀리고 굽었다. 때론 흉하게 보이는 그 발은 피와 땀과 눈물의 흔적이다.

1998년 US여자오픈 당시 해저드 지역에 간 공을 치기 위해 양말을 벗고 물에 들어간 박세리. 그는 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외환위기에 힘겨워하던 국민에게 큰 힘을 줬다. [중앙포토]

1998년 US여자오픈 당시 해저드 지역에 간 공을 치기 위해 양말을 벗고 물에 들어간 박세리. 그는 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외환위기에 힘겨워하던 국민에게 큰 힘을 줬다. [중앙포토]

‘골프 여왕’ 박세리(41)는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워터 해저드에 맨발로 들어가 멋진 샷을 해서 우승했다. 박세리는 그때까지 자신의 발을 창피하게 생각했다. 훈련을 너무 많이 해서 발톱이 여러 번 빠지고 발가락이 휘고 굳은살도 많아 못생겼다고 느꼈다. 그러나 당시 양말을 벗어 드러난 박세리의 발을 보고 시청자들은 감동했다.

새까만 피부와 대비되는 하얀 발을 보고 사람들은 박세리가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맨발의 투혼’은 IMF 외환위기로 시름에 빠져있던 국민에게 큰 힘을 줬다.

한국축구 에이스 손흥민. 그의 발은 일부 발톱이 빠지고 시커멓게 멍들어있다. [중앙포토]

한국축구 에이스 손흥민. 그의 발은 일부 발톱이 빠지고 시커멓게 멍들어있다. [중앙포토]

‘한국축구 에이스’ 손흥민(26·토트넘)의 발은 일부 발톱이 빠지고 시커멓게 멍들어 있다. 손흥민의 성장 과정은 무협지나 만화에 나올 법하다. 학창 시절 강원도 춘천에서 아버지 손웅정(56) 씨와 하루에 1000개씩 슈팅훈련을 했다. 대표팀 훈련에서도 가장 늦게까지 프리킥을 찰 만큼 ‘독종’이다. 혹독한 훈련 덕분에 손흥민은 기존 한국 선수들과 차원이 다른 양발 슛을 장착했다.

박지성도 발톱이 대부분 시꺼멓게 죽었고 발바닥은 나무처럼 단단하다. [중앙포토]

박지성도 발톱이 대부분 시꺼멓게 죽었고 발바닥은 나무처럼 단단하다. [중앙포토]

박지성(37)의 발도 유명하다. 어릴 때 발의 감각을 키우기 위해 맨발로 축구를 한 그는 발톱이 대부분 시꺼멓게 죽었고 발바닥은 나무처럼 단단하다. 그만한 노력을 했기 때문에 박지성은 평발인데도 ‘두 개의 심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스포츠 스타들 피와 땀의 흔적

스포츠 스타들 피와 땀의 흔적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하는 ‘빙속 여제’ 이상화(29·스포츠토토)의 발은 발 색깔이 누런색으로 변했을 정도다. 스케이트를 신고 빙판을 가를 때 발의 감각을 살리고 얼음 면과 마찰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양말을 신지 않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스케이트 날에 베여 서른 바늘 이상 꿰맨 이상화의 발목에는 지금도 흉터 자국이 남아있다. 김경록 기자

중학교 2학년 때 스케이트 날에 베여 서른 바늘 이상 꿰맨 이상화의 발목에는 지금도 흉터 자국이 남아있다. 김경록 기자

20대 여성의 발이라고 믿기 힘든 ‘황금색 발’에도 이상화는 “공식 행사 땐 머리를 다듬고 메이크업을 하면 된다. 황금색 발이 부끄럽진 않다”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스케이트 날에 베여 서른 바늘 이상 꿰맨 이상화의 발목에는 지금도 흉터 자국이 남아있다.

암벽 위 발레리나라 불리는 김자인.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암벽 위 발레리나라 불리는 김자인.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스포츠클라이밍 리드(Lead) 부문 월드컵 최다우승(26회)에 빛나는 김자인(30)의 발은 보기 안쓰러울 만큼 울퉁불퉁하다. 리드는 15m 인공암벽을 정해진 시간(6~8분) 안에 누가 더 높이 오르는지를 겨루는 종목이다.

이 종목에 이상적인 키 1m 64㎝보다 11㎝가 작은 김자인은 “키 큰 선수들은 한 번에 홀드를 잡지만, 난 다리를 뻗어도 닿지 않아 점프를 해야 한다. 신발도 내 발 크기보다 20㎜나 작은 205㎜를 신는다. 발가락이 휘어져 고통이 따르지만 작은 신발을 신어야 발에 힘을 모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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