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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부지 아재의 변신 "수퍼히어로보다 미래소년 코난 떠올렸죠"

중앙일보

입력

최근 '손님' '도리화가'의 부진을 딛고 한국형 히어로 영화 '염력'으로 돌아온 '8000만 배우' 류승룡(48). [사진=프레인글로벌]

최근 '손님' '도리화가'의 부진을 딛고 한국형 히어로 영화 '염력'으로 돌아온 '8000만 배우' 류승룡(48). [사진=프레인글로벌]

 “완전히 만화 같은 내용이잖아요. 이게 (영화로) 될까, 하면서도 연상호 감독이라 믿음이 갔어요.” 

 배우 류승룡(48)이 ‘염력’(31일 개봉)의 한국 토종 히어로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평범한 은행 경비원이 약수를 잘못 마시고 생각만으로 물건을 움직이는 초능력이 생긴다는 기발한 발상의 영화다. 류승룡이 출연을 약속한 건 연상호 감독의 전작 ‘부산행’이 1000만 영화가 되기 전의 일이다. 연 감독의 좀비 재난 애니메이션 ‘서울역’에서 목소리 연기를 맡았던 류승룡은 2년 전 ‘염력’의 시놉시스만 듣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감독의 어떤 점에 믿음이 갔나. “사람 좋고, 프로페셔널하다.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원하는 그림이 명확하다. 그 안에서 의견을 주고받으며 배우들이 자유롭게 놀게 한다.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마치 소금처럼 현장에 모인 모든 사람이 고르게 맛을 내게 한다.”
-히어로 영화에 관심 있었나. “아이들이 좋아해서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도 보지만, 어릴 적 ‘미래소년 코난’을 신나게 응원했던 기억이 더 강하다. 코난은 반바지만 입고 악당과 싸우잖나. ‘염력’의 석헌도 (할리우드 영화처럼) 타이즈 입고 휙휙 날아다니는 히어로가 아니다. 그래서 더 하고 싶었다.”

'염력' 한 장면. 감독 요청으로 몸무게를 12kg 늘린 류승룡의 후덕한 외모가 '아재 히어로'와 차지게 맞아 떨어진다. [사진=NEW]

'염력' 한 장면. 감독 요청으로 몸무게를 12kg 늘린 류승룡의 후덕한 외모가 '아재 히어로'와 차지게 맞아 떨어진다. [사진=NEW]

석헌은 평범하다 못해 쪼잔한 사내다. 10년 전 아내와 딸을 두고 가출했다. 잘못 선 빚보증 탓에 피해가 갈까 이혼한 것이라지만 하나뿐인 딸의 얼굴 한 번 보러 온 적 없다. 친하게 지내던 은행 청소부(예수정 분)가 곤경에 처해도 모른 척한다. 이 철부지 ‘아재 히어로’는 초능력이 생기자 나이트클럽에서 쇼해 돈을 벌 궁리부터 한다. 라이터, 담배꽁초 따위 잡동사니를 공중부양시키고 의기양양해 하는 모습은 기존 히어로들의 화려한 활약상과 달라 친근하고 흥미롭다.
-염력을 부리는 장면의 오두방정 온몸 연기가 인상적이더라. “시나리오에는 ‘최선을 다한다’고만 적혀 있었다(웃음). 무거운 걸 공중에 옮길 때 온몸 바쳐 터질 듯한 느낌을 살리다 보니 무릎이며, 혀까지 쓰게 됐다. 연 감독이 자주 연기 시범을 보였다.”

제2의 유리겔라를 꿈꾸며 나이트클럽 사장 앞에 초능력 묘기를 선보이는 석헌. [사진=NEW]

제2의 유리겔라를 꿈꾸며 나이트클럽 사장 앞에 초능력 묘기를 선보이는 석헌. [사진=NEW]

‘염력’은 중년 남자 석헌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변화를 이끄는 건 20대 딸 루미(심은경 분)다. 재개발구역에서 장사하다 철거용역에게 엄마를 잃은 루미는 동료 상인들과 힘을 합쳐 상가를 지키려 한다. 영화의 결말에서 석헌이 자처한 선택에 대해 류승룡은 “항상 도망만 다니던 아빠가 처음으로 모든 것을 책임지고 딸 앞에 떳떳하게 서는 모습으로 봐달라”고 했다.

영화 '염력' 주연배우 류승룡 #

-전투경찰이 재개발구역에 진입하는 장면 등 용산참사가 떠오른다는 반응이 많다. ‘염력’ 촬영 전 연상호 감독과 배우들이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공동정범’을 관람했다고. “연 감독의 제안으로 미완성 편집본을 봤다. 하지만 ‘염력’이 다루는 건 보편적인 소재다. 특정 사건이 아니라 시대적인 위태로움으로 봐주길 바란다.”
-지난 정권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독립영화배급사 시네마달이 어려움을 겪을 때 거액의 후원금을 보냈다고 들었다. “글쎄, 내 입으로 말하기 쑥스럽다.”

'염력'에서 재개발 구역 상인들과 철거 용역이 대치하는 장면. 상가 건물 앞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화염을 터뜨렸다. [사진=NEW]

'염력'에서 재개발 구역 상인들과 철거 용역이 대치하는 장면. 상가 건물 앞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화염을 터뜨렸다. [사진=NEW]

‘염력’은 배우로서 류승룡에게도 중요한 승부수다. 2004년 ‘아는 여자’의 단역으로 데뷔한 이래 그는 14년간 30편 남짓한 영화로 8000만 관객을 모았다. ‘명량’ ‘7번 방의 선물’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1000만 영화만 세 편이다. 그러나 최근작 ‘손님’ ‘도리화가’는 관객 100만 명에도 못 미쳤다. 기대를 모은 ‘제5열’은 제작이 무기한 연기됐다. 류승룡은 부침을 겪으며 “초심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트레킹이 취미인 그는 “전국의 섬을 다니며 어르신들 만나 한두 마디 툭툭 듣는 데서”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배우로서 마음가짐이 바뀐 부분도 있을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가 어렵게 말을 꺼넸다. “전에는 좋은 작품 만나 (흥행이) 잘 됐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앞섰어요. 영화를 늦게 시작하기도 했고, 자갈도 씹어먹을 만큼 쉼 없이 열정을 부렸죠.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영화는 협업이구나. 촬영할 때 하루 세끼 함께 먹는 스태프들에 대한 소중함도 크고요. 결과도 중요하지만, 바로 지금 이 순간 행복하고 충실하면 반은 이룬 거라 생각해요.”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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