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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계약 취소해도 실거래가 그대로 남아" ...자전 거래 의혹에 신뢰 추락한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강남 A아파트 전용면적 84㎡은 지난해 중순 19억~20억원에 거래됐다. 그런데 같은 해 10월에는 24억원에 실거래가 신고가 됐다. 11~12월에 거래된 세 건의 실거래 가격 차이는 비슷한 층수인데도 3억원 넘게 차이가 났다.

가격 올린 뒤 의도적으로 계약 취소 가능성 #계약 취소돼도 실거래가 그대로 남아 #호가·시세 부추기는 도구로 악용 지적 #주택 매매 계약 해지 신고 의무화해야 # 실거래가 신고 기간 단축도 검토 필요 #

B아파트 82㎡는 지난해 9월 14억~15억원에 거래됐다. 하지만 다음달에는 저층임에도 17억원에 계약했다는 실거래가 신고가 들어왔다. 인근 C아파트도 비슷했다. 11월 19억5000만~21억원에 거래된 94㎡가 12월 23억원에 신고됐다.

정부 부동산거래조사팀이 실거래가 허위 신고 의심 사례로 들여다보고 있는 곳이다. 한 감정평가법인 관계자는 “비슷한 기간에 평균 시세에서 10% 이상 차이가 나면 이상 가격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재 부동산 거래를 하면 계약 체결일부터 60일 이내에 관할 시군구에 실거래가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신고를 허위로 하는 경우가 많다. 2016년에만 실거래가 신고 위반이 3884건이나 됐다. 지난해에도 6월까지 신고 위반이 2748건이나 됐다. 특이한 점은 탈세를 노린 '다운 계약(실거래가 보다 낮은 금액으로 신고)'이 많지만, 가격을 올려 신고하는 '업계약'도 매년 200~300건씩 적발된다는 점이다. 이 자료는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 때 국토부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내용이다.

 실거래가를 올려 신고하면 취득세를 더 내야 하는 등 부담이 커진다. 그런데도 실거래가를 올려 신고하는 이유는 뭘까. 가격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다. 실거래가 가격이 올라가면 그 동네 주변 시세가 덩달아 올라간다.  호가가 바로 뛰고 가격은 상승세를 탄다.

문제는 이런 업계약의 상당수가 최종 계약이 체결되지 않고 중간에 취소된 계약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작전 세력이 실거래가를 허위로 신고해 시장 가격을 조작할 수 있다는 의혹이다. 가계약하고 그 내용을 실거래가로 신고한 뒤 최종 계약을 하지 않는 수법이다.

지난 19일 정부 합동 부동산거래조사팀은 서울 강남구 A 아파트 B동 매매를 중개한 공인중개업소를 찾았다. 지난해 10월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계약한 것으로 실거래가 신고가 됐는데 계약이 취소돼 소유권 이전 등기가 되지 않은 이유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조사팀은 의혹이 확산하고 있는 자전거래(실제 혼자 한 것인데 쌍방 거래가 일어난 것처럼 꾸미는 것) 혐의를 두고 공인중개소 대표를 조사했다. 조사팀 관계자는 “10, 11월 중에 평균 시세보다 실거래가가 높게 신고된 곳이 집중 조사 대상”이라며 “강남을 중심으로 기한을 두지 않고 조사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합동 부동산거래조사팀

정부 합동 부동산거래조사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의혹을 밝혀달라는 청원이 100건 가까이 올라와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조차 “이론적으로는 자전거래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배경에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이 있다. 부동산 가격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해 운영하는 제도가 되려 시장을 불투명하게 하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주택 매매 계약이 이뤄지면 거래 당사자나 중개를 맡은 공인중개사는 계약 체결 후 60일 이내에 시군구청에 실거래가를 신고해야 한다.

소유권 등기 이전을 할 때도 실거래가 신고 필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등기부에도 실거래가를 기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고된 실거래가 정보는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등재된다.

문제는 계약이 취소됐을 경우다.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부동산 거래 계약이 무효·취소 또는 해제된 경우 신고서를 관청에 제출할 수 있다’고만 돼 있다. 법으로 강제하지 않는다. 해제 신고를 하면 계약 당시 신고한 실거래가는 공개시스템에서 자동 삭제된다. 하지만 신고를 하지 않으면 그대로 남는다.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는 셈이다.

해제 신고를 하더라도 문제는 있다. 계약을 취소하면 실거래가가 자동 삭제되지만, 취소 전까지는 실거래가 시스템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계약이 취소된 거래가 해당 단지의 호가·시세를 올리는 역할을 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 전문위원은 “한두 건의 거래로 시장 시세가 결정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개선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정부는 공개시스템에 공개된 실거래가 중 계약 취소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따로 통계를 잡지는 않는다. 국토부 관계자는 “실태 점검 후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주택 계약 해지 신고를 의무화하는 법률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대법원 등기정보시스템과 연계해 실거래가 신고 후 등기 이전이 되지 않는 매매 계약 건을 조사해 공개할 필요도 있다.

실거래가 신고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매매가가 시세보다 높거나 낮게 계약될 경우 거래가 줄 것을 우려해 공인중개사들이 최대한 늦게 실거래가 신고를 하면서 시세가 정확히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06년 실거래가 신고제가 도입됐을 당시에 신고 기간은 계약 후 30일 이내였다. 하지만 계약이 변경되는 사례가 많고 신고 기간이 촉박하다는 공인중개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60일로 연장됐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실거래 신고 기간이 두 달이나 되기 때문에 실제 시세를 파악하기 어렵고 가격이 왜곡될 가능성도 있다”며 “신고방법이 복잡하고 어려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정부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단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부동산중개업소에 내걸린 시세 안내문.

서울 송파구에 있는 부동산중개업소에 내걸린 시세 안내문.

반대로 계약 취소로 인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소유권 등기 이전이 완료된 거래만 실거래 시스템에 반영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전문위원은 “등기 이전이 된 계약만 실거래로 반영하면 신뢰도가 높아지겠지만, 소비자가 제때 가격을 파악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며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의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자계약을 활성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부동산 전자계약은 종이 대신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부동산 거래 전자계약시스템’을 통해 계약서를 작성하고 전자 서명을 하는 방식이다. 전자계약을 활용하면 실거래가 신고가 자동 처리돼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민간 활용도는 미미하다. ‘지난해 전국 주택 거래량은 94만7000건이었는데, 민간에서 전자계약으로 이뤄진 거래는 주택·건물·토지를 합해 7600건에 불과했다. 이남수 팀장은 “개인들이 전자계약을 활용할 때 대출 금리 인하 등 인센티브를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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