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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하지 마라, 자연을 보며 해석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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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호 24면

T600 미래의 스포츠카(2015)

T600 미래의 스포츠카(2015)

루이지 콜라니

루이지 콜라니

독일의 산업 디자이너 루이지 콜라니(Luigi Colani·90)의 별명은 ‘살아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찻잔부터 비행기까지, 그가 디자인하지 않은 영역은 없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며 곡선을 고집하기도 했다. 단순히 예뻐서가 아니었다. 자연의 형태에서 최고의 기능을 얻을 수 있다고 그는 믿었다. 돌고래를 닮은 비행기, 개구리 모양의 오토바이를 디자인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3월 25일까지 열리고 있는 ‘자연을 디자인하다, 루이지 콜라니 특별전’에서  늘 수십 년을 앞섰던 대가의 디자인을 만났다.


사쿠라 마루 선박(1978)

사쿠라 마루 선박(1978)

이륜 자동차(1989)

이륜 자동차(1989)

릴렉스 의자(2016)

릴렉스 의자(2016)

꼴라니 개구리(1973)

꼴라니 개구리(1973)

쿠쉬 라운지 의자(1969)

쿠쉬 라운지 의자(1969)

전시장 한가운데 빨간 조형물이 놓여 있다. 앉을 수 있다는 팻말을 보고서야 의자임을 알았다. 등을 기대고 다리를 뻗는 순간, 그 이상한 형태의 의자가 몸에 감겨왔다. 의자의 곡면이 앞으로 굽은 목을 단단히 받쳐주기도 했다. 독일 가구 회사 쿠쉬 앤 코의 의뢰로 루이지 콜라니가 1969년 제작한 라운지 의자다. 직선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의자는 사람 몸의 곡선을 본 따 만들었다. 출시 이후 공상과학 드라마의 소품으로 쓰이기도 했던 이 의자의 혁신적인 모양새는 인간의 몸에 원래 깃들어 있던 것이었다.

바이오 디자인 창시자, 루이지 콜라니 전시 가보니

몸의 모양과 닮아 편안한 의자에 앉아 있으면 벽면의 영상물이 눈에 들어온다. 1960~80년대를 뒤흔들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미래적인 그의 디자인학개론이라도 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영상 속에서는 가오리가 바닷속을 헤엄치고 있다. 돌고래가 유영하며, 새는 하늘을 날아다닌다. 이 자연 다큐멘터리의 주인공들을 가만 보고 있자니, 전시품과 빼닮았다. 돌고래를 닮은 비행기, 개구리 모양의 오토바이, 고래 꼬리를 닮은 의자…. 외계인이 지구에 선사한 물건 같기도, 장난감 같기도 한 작품을 그는 자연에서 끌어와 만들었다. “훌륭한 디자이너란 무엇인가를 발명해서는 안 된다. 자연처럼 보다 크고 위대한 것을 해석해야만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비행기를 디자인할 때는 새를 봅니다. 도구를 디자인할 때는 손의 움직임을 보고, 의자를 디자인할 때는 몸의 움직임을 보며 가장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합니다. 이것이 바이오 디자인입니다. 인간이 하늘을 날 수 있게 된 지 고작 75년이 되었지만 자연 속의 생물은 그렇지 않죠. 아득히 머나먼 몇백만 년 전부터 날고 있습니다. 인간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멋지게 비행하는 파트너가 자연 안에 있기 때문에 굳이 새로운 무언가를 발명해 낼 필요가 없습니다. 자연을 보며 영감을 받고 해석하면 그만입니다.”

형태가 기능이 되고, 기능은 형태가 된다

귓바퀴 형태의 스피커 박스 ‘3D철학자’(1980)

귓바퀴 형태의 스피커 박스 ‘3D철학자’(1980)

T600 미래의 스포츠카 모형(2015)

T600 미래의 스포츠카 모형(2015)

자연의 곡선만 따라하는 단순 모방이 아니었다. 대가의 디자인 속에는 치밀한 계산이 숨겨져 있었다. 공학도 출신 디자이너라는 그의 이력을 보면 이해된다. 베를린예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그는 프랑스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공기역학을 전공했다. 그의 관심사처럼 작품 속에 과학과 예술이 공존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첫 직장은 미국 항공기 제조사 더글라스 에어크래프트였고, 신소재 프로젝트 팀장으로 일했다. “지금도 배ㆍ자동차ㆍ비행기와 같은 이동수단이 더 빨리 가는 데 관심 있다”는 그는 자동차 뼈대인 프레임과 차체가 하나로 합쳐진 구조인 모노코크형 스포츠카를 세계 최초로 디자인하기도 했다. ‘BMW 700’이다.

89년 페라리를 위해 디자인한 슈퍼카 ‘콜라니 페라리 테스타 도로(Colani Ferrari Testa d’Oro)’의 경우 시속 351㎞를 달려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콜라니는 빠른 속도를 좋아해 옷마저도 흰색을 고집한다. 그는 “색채는 속도이고, 빨리 돌아가는 빛을 보면 흰색이기에 흰색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1000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게 디자인한 돌고래를 닮은 비행기 모형, 오토바이와 운전자의 몸체가 하나로 통합되어 개구리 모양을 띄는 오토바이는 허투루 나온 게 아니었다. 연료를 절약하면서 속도를 높이기 위해 자연을 해석한, “90%는 자연에서, 10%는 멍청한 번역가 콜라니에게서”라는 철학에서 나온 디자인이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볼 수 있는 캐논 카메라 ‘T90’의 경우 오늘날 카메라 디자인의 이정표가 됐다. 손잡이 부분을 둥글게 처리한 익숙한 디자인이지만 그는 이를 83년 최초로 디자인했다. 귓바퀴에 쏙 들어가게 디자인한 소니 폴더형 이어폰(MDR-A60, 1984)의 경우 오늘날 익숙한 이어폰 디자인의 첫 모델이기도 하다.

이처럼 금세 상용화된 제품도 많지만 슈퍼캠핑트럭 모형(1980)처럼 30년이 넘는 오랜 연구 끝에 올 초 출시 예정인 제품도 있다. 지금까지 아이디어 발표로만 그친 디자인 제품도 여전히 많다. 하지만 “공상과학적 디자인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현실을 창조한다”는 그의 말대로 가까운 미래에서 실제 제품으로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작품 80여점이 설치됐다. 형태가 기능이 되고 기능은 곧 형태가 된, 지금까지도 미래적인 콜라니의 디자인 세계다. ●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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