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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盧유서 갖고 다닌다"…MB가 건드린 '文 트라우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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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금도 그분의 유서를 내 수첩에 갖고 다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에서 인사말을 한 후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에서 인사말을 한 후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책 『운명』에 나오는 대목이다. 바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는 말로 시작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다. 유서를 간직하고 다니는 이유에 대해선 “그냥 버릴 수 없어서 그럴 뿐”이라고 했다.

 지난해 5월 23일. 문 대통령은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의 8주기 추념식에 참석해 “현직으로 참석하는 마지막 추념식”이라며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이제 가슴에 묻자”고도 했다.

 문 대통령과 친노(親盧)ㆍ친문(親文) 진영에게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성역에 가까운 영역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8일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이쪽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면서 왜 그 얘기를 끌어들이느냐”며 “그의 상주(喪主)를 맡았던 문 대통령은 ‘잘못된 정치 수사로 인한 죽음’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됐던 2009년 4월 30일을 문 대통령은 ‘치욕의 날’이라고 적었다. 노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았던 그는 “검찰이 불구속 기소를 하더라도 공소유지가 쉽지 않다고 판단해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끌기만 했다”며 “(그들은) 언론을 통한 모욕주기와 압박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정치수사로 확신했다는 뜻이다.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홈페이지에 "중요한 것은 증거. 성실히 방어하고 해명하겠다'고 남겼다. 노 전 대통령 오른쪽부터 문재인 대통령, 문용욱 전 청와대 부속실장, 전해철 전 민정수석, 김경수 전 비서관.  [사진공동취재단]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홈페이지에 "중요한 것은 증거. 성실히 방어하고 해명하겠다'고 남겼다. 노 전 대통령 오른쪽부터 문재인 대통령, 문용욱 전 청와대 부속실장, 전해철 전 민정수석, 김경수 전 비서관. [사진공동취재단]

 한 여권 인사는 "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을 수습했고 처참한 광경을 다 보지 않았느냐. 그건 정말 참담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상황에서도 장례 중 언론 브리핑 등을 하며 문 대통령은 한치도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였는데 오히려 얼마나 충격이 컸으면 저렇게 담담할 수 있느냐는 얘기를 주변에서 주고받았다"고 회상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마치고 대검 을 나오고 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마치고 대검 을 나오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발표된 문 대통령의 입장은 참모진의 정무적 판단과는 상당한 차이가 났지만 아무도 다른 의견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자신의 책 『운명』을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는 문장으로 마무리하기도 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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