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2030세대들이 앓고 있는 열병이다.” 최근 불거진 ‘암호화폐 광풍’을 경제학자 우석훈(50)씨는 이렇게 요약했다. 우씨는 2007년 당시 20대를 ‘88만원 세대’라고 지칭하며 이름을 알렸다. 박권일씨와 함께 저술한 『88만원 세대』에서다. 이 용어는 대학 졸업 후에도 적은 임금에 비정규직을 전전해야 하는 20대의 미래 없는 삶을 대변하는 말이 됐다.
『88만원 세대』 저자 우석훈 #젊은 세대 개인의 문제 아닌 #한국 사회 시스템의 실패 #집값은 비싸고 부모 돈 없으니 #2030이 열병 앓고 있는 것
그로부터 10여 년이 흘렀다. 지금의 2030세대는 10년 전 88만원 세대와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우씨는 “두 세대의 고충이 비슷해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래가 안 보이는 한국 청년들의 불안감이 암호화폐 투자 광풍으로 이어졌다”며 “돈도 없고, 무엇을 해도 안 될 텐데 이건(암호화폐 투자) 될 수도 있다는 심리가 반영됐다”고 해석했다. 특히 “젊은 세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한국 사회의 실패”라고 진단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암호화폐 광풍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나.
- “신기술이 주는 판타지와 한국 사회의 현실에 좌절하는 심리가 결합됐다. 독일·프랑스 등 외국 청년들이 암호화폐를 몰라서 투자를 안 하는 게 아니라 아직은 이상하다고 판단해 뛰어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대안이 없다. 집값은 비싸고 부모는 돈 없는 듯하니.”
- 다른 나라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김치 프리미엄’까지 생겼다.
- “그 프리미엄 비율만큼 한국 청년들이 다른 나라 젊은이들보다 힘들어한다고 봐도 될 것이다. 외국에도 암호화폐는 똑같이 존재하는데 한국에서는 ‘돈만 있으면 괜찮다’는 인식이 높고 미래에 대한 불안·공포·희망이 더 다이내믹하게 섞여 있다.”
- 이런 투기 현상이 처음이 아닌데.
-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 내가 가르치던 대학생들로부터 연락이 굉장히 많이 왔다. 돈을 많이 잃어 자기들 인생이 끝났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조언을 구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차이나·브릭스 펀드에 빚내서 투자했다가 반 토막이 나는 등 피해가 극심했다.”
- 암호화폐에 투자해 본 적은 없나.
- “지난해 초 지인이 암호화폐에 투자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얼마나 오를지는 몰라도 오를 거라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이걸로 돈 벌어서 안 좋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투자를 해서 얻는 지식도 없겠더라. 주식은 투자를 하면 특정 회사에 대해 깊게 알 수 있는데 암호화폐는 그렇지 않다. 암호화폐 투자는 극단적 단타 투자다. 장기간 가치 투자를 해야 하는데 암호화폐를 10년 갖고 있을 사람이 있겠나.”
- 정부의 규제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보나.
-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거래소 폐쇄가 살아 있는 옵션’이라고 했다. 정부 입장에서 죽은 옵션이라는 건 없다. 거래소 폐쇄는 여러 대안 중 하나일 뿐이다. 정부는 ‘외환거래법’을 정비할 것이다. 암호화폐가 외환이냐, 수출 상품이냐가 규정돼야 한다. 복잡한 일이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 규제로 인해 ‘블록체인’ 산업의 성장을 막는다는 시각도 있다.
- “암호화폐의 성격을 규정지어 제도권 내로 들여오는 게 중요하다. 다른 시장의 교란을 막기 위해서다. 이로 인해 어느 정도의 산업 위축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현재 암호화폐 시장은 규모에 비해 돈이 지나치게 몰린 게 사실이다.”
- 암호화폐의 미래가 어떨 것이라 보나.
- “사라지거나 안정화될 거다. 안정화돼도 수익 변동성이 줄어 안정화되면 더는 지금처럼 매력적인 투자처는 아닐 것이다. 제일 마지막에 뛰어드는 사람은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암호화폐는 화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화폐는 영속성을 지닌 국가가 지정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가치가 생긴다. 안정화된다 해도 ‘상품권’ 역할 정도만 하게 될 듯싶다.”
조한대·최규진 기자 cho.handa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