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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귀재 손정의, 19조원 실탄 마련해 스타트업 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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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손정의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손정의(61·사진) 회장의 출발은 판잣집이었다.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탄광 노동자로 조선에서 일본에 갔다. 1957년 손 회장이 태어났을 때 가족들은 일본 규슈의 사가(佐賀)현에서 무허가 판잣집에 살고 있었다.

도쿄·런던 증시에 소프트뱅크 상장 #‘비전펀드’ 판 키워 유망 기업 발굴 #손 회장 “이기는 군단 만드는 과정”

지금은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다. 블룸버그가 평가한 손 회장의 재산은 146억 달러(약 15조5000억원)에 달한다. 현재 일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갑부다.

손 회장의 야망은 끝이 없다. 이번에는 통신 자회사인 소프트뱅크의 상장으로 도쿄 증권거래소에서 새로운 기록에 도전한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상장에 앞서 2조엔(약 19조원) 규모의 주식을 투자자들에게 매각하는 기업공개(IPO)를 할 계획이다. 일본에서 거품경제가 절정이었던 1980년대 후반 이후 약 30년 만에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현재 도쿄 증시에는 지주회사 격인 소프트뱅크그룹이 상장돼 있다. 자회사인 소프트뱅크 주식의 99.99%를 갖고 있다. 손 회장은 이 회사를 도쿄와 런던에서 동시에 상장시킨다는 구상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도쿄 증시에서 소프트뱅크그룹의 주가는 15일과 16일 이틀 연속 올랐다.

소프트뱅크의 시작은 단돈 1000만 엔이었다. 손 회장이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서 1981년 창업했을 때 자본금이다. 16일 현재 도쿄 증시에서 소프트뱅크그룹의 시가총액은 10조 엔(약 96조원)에 달했다. 37년 만에 회사가 100만 배나 커진 셈이다.

손 회장은 상장을 통해 조달한 돈으로 전 세계에서 유망 스타트업 기업을 발굴한다는 구상이다. 이미 손 회장은 세계적인 ‘큰손’ 중의 ‘큰손’이다. 지난해 5월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1000억 달러(약 106조원) 규모의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를 조성했다. 판을 키워서 크게 먹는다는 ‘손정의 스타일’에 넉넉한 ‘실탄(현금)’까지 준비되면서 더욱 ‘날개’를 달게 됐다.

이 중 450억 달러를 사우디가 부담했는데, 손 회장과 모하메드 빈 살만 부왕세자의 합의에 걸린 시간은 고작 45분이었다. 이를 두고 손 회장은 “1분에 10억 달러를 갖고 왔다”고 자랑삼아 말했다. 손 회장의 소프트뱅크는 비전 펀드에 250억 달러를 내놨고, 나머지는 애플과 퀄컴 등이 참여했다.

손 회장은 만족을 모른다. 이달 초 닛케이산교(日經産業)신문과 인터뷰에서 분명히 밝혔다. 그는 “이 돈도 충분치 않다. 앞으로 2년이면 다 써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10배인 ‘100조엔 펀드’를 만들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뉴욕 월가에서는 난관에 봉착할수록 ‘신의 한 수’로 거래를 완성하는 손 회장의 협상술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손 회장의 협상 카드는 크게 두 가지다. 투자를 받는 쪽에 예상보다 훨씬 큰 금액을 안기는 ‘큰손 카드’와 원하는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코너로 몰아붙이는 ‘압박 카드’다.

지난해 초 손 회장은 중국의 차량공유업체 디디추싱과 지분투자 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디디추싱은 이미 100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기 때문에 손 회장의 돈이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손 회장은 “그럼 이 돈을 당신의 경쟁사에 투자하겠다”고 몰아붙였다. 결국 디디추싱은 소프트뱅크의 50억 달러 투자를 받아들였다. 손 회장은 미국의 우버도 이런 식으로 압박해서 90억 달러를 주고 지분 15%를 확보했다.

손 회장은 지난해 100군데 스타트업에 360억 달러를 투자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벤처캐피탈 1, 2위의 투자 금액을 합친 것보다 많은 돈이다. 투자한 기업의 업종도 다양하다. 대표적인 곳은 세계 1위의 차량공유업체 우버, 자율주행 영상처리업체 엔비디아, 위성통신업체 윈웹, 로봇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 등이다. 농업 관련 업체인 플렌티에도 2억 달러를 투자했다.

손 회장은 자신의 투자를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단에 비유했다. 그는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손 회장은 “기라성 같은 신인들을 팀에 많이 데려오고, 이들을 자극해서 진화를 계속하게 하겠다”며 “이게 항상 이기는 군단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소프트뱅크

소프트뱅크

● 1981년 소프트웨어 유통업체 창업
● 자본금 1000만엔
● 1998년 도쿄 증권거래소 1부에 상장
● 일본 3대 이동통신 업체로 성장
● 미국 야후, 중국 알리바바 등 지분 투자
● 1000억 달러 규모 ‘비전 펀드’ 조성
● 그룹 시가총액 10조3000억엔(약 99조원)

뉴욕=심재우 특파원, 서울=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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