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불 끈 어둠속에서 작품 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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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디에 있는가?'전이 열리는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 미술관은 캄캄하다. 전시장은 블랙 박스가 된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전시에 조명이 필요 없다고 본 전시기획자의 생각 때문이다. 기획을 맡은 이영철(계원조형예술대 교수)씨는 "조명이 오히려 없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각장애인이 아니라도 전시장을 찾은 이들이 한 번쯤 눈을 감고 미술작품을 감상해 보는 경험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미술품은 꼭 시각적일까라는 의문이 떠오른다.'너 어디에 있는가?'는 지난해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열렸던 '손끝으로 보는 조각'을 잇는 전시다.

보지 못하는 사람들, 어둠 속에 놓인 사람들과 미술로 대화를 하는 특별한 자리라 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소외 영역이라 할 수 있는 미술을 그들에게 돌려주려는 마음이 제목에서 묻어난다.

작품 감상법은 단순하다. 시각장애인 안내원의 손을 따라, 장애자용 발판이 깔린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눈을 감으면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가늠할 수 없지만 소리.냄새.온도.촉각 등엔 더 민감해지게 된다.'거기 어디야'라고 자신에게 물으면서 작품을 느끼는 것은 시각적 편견을 거두게 만든다. 관람객은 자신의 몸과 심리상태, 사회적 조건 등을 새삼 돌아보며 자기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전뢰진.박충흠.강희덕씨가 내놓은 조각, 서보형.전지인씨가 꾸민 청각으로 보는 영화관, 천연향으로 좁은 통로를 채운 김승영씨의 산책용 통로, 벽면 양쪽에 구멍을 뚫어 관람객들끼리 우연하게 손을 마주치게 한 서정국씨의 작업 등 참여작가들의 착상도 신선하다. 어둠 속에서 무너지는 전통적인 미술의 정의와 가치를 되씹어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5일부터 13일까지. 02-760-4602.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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