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인 A씨는 지난해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말한 뒤 살해 협박을 받았다. 여러 차례 몸을 피했지만 결국 납치돼 흉기에 찔리는 피해를 입었다. 견디다 못한 A씨는 남자친구를 경찰에 신고했다.
구속된 남자친구는 법원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하지만 A씨는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알고 있는 남자친구가 출소한 뒤 찾아와 보복 폭행할 것이 두려웠다. 지난해 중순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신청, 10월 말 허가를 받은 뒤에야 안도할 수 있었다.
주민번호변경위, 지난해 5월부터 810건 접수·304명 의결 #폭행·감금·데이트폭력 33건, 성폭력 등 피해 10건에 달해
40대 초반 여성인 B씨는 전 남편의 가정폭력을 피해 두 딸과 함께 주거지원시설에 입소했다. 하지만 전남편이 주민등록번호를 추적해 자신들이 소재지를 알아낼까 전전긍긍했다. 두 딸이 가정폭력에 따른 2차 피해를 볼 것도 걱정이 됐다. B씨도 변경을 신청, 지난해 10월 새로운 주민등록번호를 받았다.
주민등록번호 변경이 가능해진 지난해 5월부터 이달 11일까지 7개월간 304명이 주민등록번호 변경 허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는 지난 11일 기준 810건의 변경신청이 접수됐고 이 가운데 496건을 심의, 304건을 인용했다고 15일 밝혔다. 위원회는 14차례 회의를 거쳐 접수된 810건 중 496건(61.2%)만 심의했다.
주민등록번호 유출 사실 입증 미비, 막연한 피해 우려, 주민등록번호 유출 없이 이뤄진 사기 등 법령에서 정하는 요건에 해당하지 않은 186건은 기각, 6건은 각하 결정했다.
집계 결과 총 접수 건수의 절반 이상인 484건(59.8%)이 위원회 출범 직후인 지난해 6~7월에 집중됐다. 신청 이유는 재산 604건(74.6%), 가정폭력 90건(11.1%), 생명·신체 피해 86건(10.6%) 순이었다.
시·도별로는 서울이 207건(25.6%)으로 가장 많고 경기도 187건(23.1%), 부산 63건(7.8%), 대구·인천·충남·경남 각 42건(5.2%) 등으로 나타났다.
주민등록번호 변경이 허용된 304건 중에서는 신분도용·사기전화 등 재산피해를 사유가 198건(65.1%)으로 가장 많았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피해 63건(20.7%), 폭행·감금·데이트폭력 등에 따른 생명·신체 피해 33건(10.9%), 성폭력 등의 피해 10건(3.3%) 등이 뒤를 이었다.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하려면 입증자료를 첨부해 읍·면·동 주민센터에 신청하면 된다. 이어 시장·군수·구청장의 변경 결정 청구,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 심사·의결 등을 거친다. 위원회는 접수 이후 6개월 내에 인용 여부를 결정한 뒤 결과를 통보해야 한다. 위원회가 인용하면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할 수 있고 기각하면 기존 번호를 그대로 써야 한다.
홍준형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 위원장은 “엄정한 심의를 통해 304건의 주민등록번호를 변경,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했다”며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구체적인 피해사례를 알려 주민등록번호 유출에 따른 피해를 예방하겠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