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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번호 바꿔주세요"… 재산피해 65%·가정폭력 20% 順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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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인 A씨는 지난해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말한 뒤 살해 협박을 받았다. 여러 차례 몸을 피했지만 결국 납치돼 흉기에 찔리는 피해를 입었다. 견디다 못한 A씨는 남자친구를 경찰에 신고했다.

헤어지자는 여자친구를 끌고가며 폭행하는 남성. [중앙포토]

헤어지자는 여자친구를 끌고가며 폭행하는 남성. [중앙포토]

구속된 남자친구는 법원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하지만 A씨는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알고 있는 남자친구가 출소한 뒤 찾아와 보복 폭행할 것이 두려웠다. 지난해 중순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신청, 10월 말 허가를 받은 뒤에야 안도할 수 있었다.

주민번호변경위, 지난해 5월부터 810건 접수·304명 의결 #폭행·감금·데이트폭력 33건, 성폭력 등 피해 10건에 달해

40대 초반 여성인 B씨는 전 남편의 가정폭력을 피해 두 딸과 함께 주거지원시설에 입소했다. 하지만 전남편이 주민등록번호를 추적해 자신들이 소재지를 알아낼까 전전긍긍했다. 두 딸이 가정폭력에 따른 2차 피해를 볼 것도 걱정이 됐다. B씨도 변경을 신청, 지난해 10월 새로운 주민등록번호를 받았다.

대구시 중구 동성로 중앙파출소 앞 광장에서 열린 가정폭력 예방 캠페인. [중앙포토]

대구시 중구 동성로 중앙파출소 앞 광장에서 열린 가정폭력 예방 캠페인. [중앙포토]

주민등록번호 변경이 가능해진 지난해 5월부터 이달 11일까지 7개월간 304명이 주민등록번호 변경 허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는 지난 11일 기준 810건의 변경신청이 접수됐고 이 가운데 496건을 심의, 304건을 인용했다고 15일 밝혔다. 위원회는 14차례 회의를 거쳐 접수된 810건 중 496건(61.2%)만 심의했다.

주민등록번호 유출 사실 입증 미비, 막연한 피해 우려, 주민등록번호 유출 없이 이뤄진 사기 등 법령에서 정하는 요건에 해당하지 않은 186건은 기각, 6건은 각하 결정했다.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에 접수된 시도별 접수 현황. [사진 행정안전부]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에 접수된 시도별 접수 현황. [사진 행정안전부]

집계 결과 총 접수 건수의 절반 이상인 484건(59.8%)이 위원회 출범 직후인 지난해 6~7월에 집중됐다. 신청 이유는 재산 604건(74.6%), 가정폭력 90건(11.1%), 생명·신체 피해 86건(10.6%) 순이었다.

시·도별로는 서울이 207건(25.6%)으로 가장 많고 경기도 187건(23.1%), 부산 63건(7.8%), 대구·인천·충남·경남 각 42건(5.2%) 등으로 나타났다.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의 심의 의결 현황. [사진 행정안전부]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의 심의 의결 현황. [사진 행정안전부]

주민등록번호 변경이 허용된 304건 중에서는 신분도용·사기전화 등 재산피해를 사유가 198건(65.1%)으로 가장 많았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피해 63건(20.7%), 폭행·감금·데이트폭력 등에 따른 생명·신체 피해 33건(10.9%), 성폭력 등의 피해 10건(3.3%) 등이 뒤를 이었다.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하려면 입증자료를 첨부해 읍·면·동 주민센터에 신청하면 된다. 이어 시장·군수·구청장의 변경 결정 청구,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 심사·의결 등을 거친다. 위원회는 접수 이후 6개월 내에 인용 여부를 결정한 뒤 결과를 통보해야 한다. 위원회가 인용하면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할 수 있고 기각하면 기존 번호를 그대로 써야 한다.

지난해 9월 전국가정폭력상담소 소장과 상담원들이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가정폭력 예방 캠페인을 위한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9월 전국가정폭력상담소 소장과 상담원들이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가정폭력 예방 캠페인을 위한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홍준형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 위원장은 “엄정한 심의를 통해 304건의 주민등록번호를 변경,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했다”며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구체적인 피해사례를 알려 주민등록번호 유출에 따른 피해를 예방하겠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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