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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뺏긴 검찰 미래는…썰렁해진 서초동, 포토라인도 줄 듯

중앙일보

입력

청와대가 14일 발표한 ‘권력기관 개혁방안’은 경찰이 수사를 전담하고, 검찰은 ‘2차적ㆍ보충적’으로만 개입하라는 게 요지다. 검찰 내부에서는 15일 “이제 정말 칼을 뺏겼다” “검사는 재판정에 가야 만날 수 있게 됐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형사부 위주 재편되면서 거물 수사 축소 예상 #박상기 법무장관, “검사들, 저녁있는 삶으로” #서초동 모여있던 대관 담당들도 줄어들 듯

검찰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
청와대 발표안을 토대로 그려보면 앞으로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 포토라인에 서는 정관계 거물들은 보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혐의를 인정하십니까”라는 기자들의 질문과 카메라 플래시, 손사래를 치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인사들의 모습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청와대 개혁방안이 국회 입법을 통해 처리되는 것을 전제로 한 말이다.

청와대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통해 정치인, 고위 정부관료 등에 대한 수사를 맡기는 방안을 냈다. 예를 들어 ‘국정농단’ ‘성완종 금품 게이트’ 같은 사건은 앞으로 공수처가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가 14일 전방위적인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을 특별수사 중심으로 줄이는 내용을 골자로 한 권력기구 개혁 방안을 내놓았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14일 전방위적인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을 특별수사 중심으로 줄이는 내용을 골자로 한 권력기구 개혁 방안을 내놓았다. [연합뉴스]

일선 검사들의 모습도 바뀐다. 실제로 청와대 개혁안처럼 1차 수사를 경찰에 넘기고 검찰은 경찰에서 수사한 내용으로 공소를 제기하거나 유지하는데 필요한 보충수사를 해야 한다면 이에 맞춰 검사 인력도 재편해야 한다.

청와대 발표안에서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강력부 검사들이 해오던 조직범죄, 마약수사와 특수부가 주로 맡았던 대기업 수사 등도 경찰이 “우리가 수사하겠다”고 나서면 검찰은 물러나야 한다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결국 형사부 검사들은 더 늘어나게 되고, 직접 수사를 해오던 특수부(강력부 포함) 검사들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직접 수사 범위가 ‘경제ㆍ금융 등’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법무부는 이달 25~26일 형사부 중심으로 검찰 인력을 재편하는 인사를 단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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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특수부 1등 검사’ ‘공안부 2등’ ‘형사부 3등’으로 분류해 오던 인식도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국민에게 비친 검사는 똑똑하지만 거만하고 거칠다는 특수부 검사 이미지에 가까웠다”며 “하지만 앞으로 수사에서 공소 유지 쪽으로 무게가 옮겨가게 되면 검사들 이미지도 많이 바뀌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로드맵을 추진하는 법무부는 일선 검사들의 인식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밤새 수사하고 구속을 많이 시킨 검사가 모범이던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7월 인사청문회 때부터 최근까지 검찰의 업무방식에 대해 “한국 검사들도 이젠 저녁이 있는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불필요한 권한은 내려놔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고 한다.

서초동 대검찰청에 있는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서초동 대검찰청에 있는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한 관계자는 “현 정부의 인식은 일부(금융ㆍ경제 등) 영역만 남기고 검찰은 공소유지나 하라는 것 아니냐”며 “이는 검찰을 수사기관에서 형사법 전문가 정도로 격하시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주변의 분위기도 바뀔 수 있다. 검찰의 힘이 빠지게 되면 검사를 접촉하기 위해 서초동 주변에 대기하던 기업 대관이나 로비 담당들도 신설되는 국가경찰청(가칭) 등으로 옮겨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청와대는 미국처럼 경찰이 FBI같은 수사 역할을 하고 검찰은 뒤에서 지원해 주는 구조를 그리는 게 아닌가 싶다”며 “앞으로 검찰을 나온 전관 변호사의 ‘몸값’도 예전만 못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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