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투쟁 해서라도 「국제」 찾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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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85년 2월 국제그룹의 공중분해는 당시 경제계에 엄청난 쇼크를 준 사건이었다.
「20개 계열기업을 거느리고 연간 외형이 4조8천억원(84년도) 규모로 국내재계랭킹 7위에 올라있던 대기업 그룹이 하루아침에 도산, 산산조각이 났으니 그 쇼크는 작은 일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3년여. 그동안 사람만나기를 기피하며 굳게 입을 다물었던 국제그룹의 창업자 양정모 회장 (67)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족벌중심의 방만한 경영때문에 자초된 부실도산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정치적 압력의 작용세도 끈질기게 나돌아 미스터리도 많은 사건이다.
양씨가 이제 입을 연 것은 「민주화」 바람을 탄 것일까.
대그룹의 총수였던 양씨는 현재 아파트에 혼자살며 자취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혼자 살고있는 부산 동래 럭키 아파트 8동 702호 (53평)로 찾아가 만났다. 그의 부인은 신병치료를 위해 미국에 있고 생활은 사위들과 친구들이 도와주어 별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국제그룹이 하루아침에 해체된 배경은 지금도 궁금한 것이 많은데 사전 어떤 낌새를 알았는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상의관계로 회의가 있어 부산에 있다가 2월18일 (85년) 서울에 올라 갔는데 사위인 김덕영 부회장이 사태가 심상치 않다면서 공중분해란 얘기를 해주어 처음들었다.
-언제 정식 통보를 받았나.
▲21일 신문에 정부측의 발표가 보도된 그날이다. 이필선 당시 제일은행장 (주거래은행)이 불러 갔더니 『양회장이 갖고 있는 기업을 정리할 생각인데 동의하지 않으면 좋지 못한 중대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 해볼테면 해보라고 했더니 이 행장이 『이미 방침은 정해진 것』이라고 일방적인 통고를 했다.
-국제의 경영상태가 매우 어렵다는 것은 이미 널리 소문났었고 곧 무너진다는 얘기도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관계당국의 공작이 오래전부터 진행된 것이었다. 84년 12월 26일에 1차부도가 났는데 무슨 소문을 퍼뜨렸는지 단자회사에서 교환이 막 돌아와 감당할 길이 없었다.
처음엔 도산후의 충격을 우려해서인지 한동안 정부당국이 은행을 통해 1천5백억원 가량 지원해 주었었다. 그러나 총선이 끝나자 마자 국제해체를 단행했다. 부도와 구제금융부터가 계획적이라는 심증이다.
-당시 국제의 부채가 엄청나지 않았나.
▲물론 은행빚을 많이 지고 있었고 단자돈도 많이 썼지만 결코 감당못할 상태는 아니었다. 나중에 정리할때 보니까 국제의 자산을 형편없이 줄였는데 예를들면 양산의 골프장은 3백12억원 가량되는데 2백억원으로 계산했다. 용산의 국제사옥은 짓는데만 5백억원이 들었고 지금은 1천억원늘 갖고도 못짓는데 이것을 2백50억원으로 계산했다.
제대로 계산했다면 국제를 빼앗겼더라도 내 재산이 수천억원은 남아 있어야 하는데 거꾸로 빚만 수천억원이 됐다.
-당시 양회장의 여러 사위들이 서로 빼내기 경쟁을 한것이 부실의 큰 원인이라는 소문도 많이 나돌았는데.
▲사위들이 방만한 경영을 하고 회사돈을 빼돌렸다는 얘기는 있을 수 없다. 사위들은 대부분 일류대학 출신이며 현재 조그만 사업이라도 하는 사람은 셋 뿐이다. 둘째와 네째가 컨테이너·봉제공장을 조그맣게 하고 있고 다섯째 (김덕영씨)는 본가가 갈 사니까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나머지는 전부 월급장이다. 이들이 회사돈을 빼돌렸다면 지금 그렇게 살겠느냐. 이것은 족벌경영이란 말을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었다.
-국제해체가 계획적이었다면 양회장이 정부쪽에 잘못 보인 일이라도 있었나.
▲몇가지 짚이는게 있다. 일해재단을 설립하면서 대기업 그룹에서 3백억원을 모은다는 얘기가 나왔고 나도 결국 5억원을 냈다.
그 과정에서 한번은 그일을 책임맡았던 C씨가 찾아왔기에 3백억원이 너무 많지 않으냐고 바른말을 했다. 나중에 들리는 얘기로는 그가 양회장이 협조를 잘 안하느니, 불친절 하다느니 하는 보고를 고위층이 했다는 것이었다. 그후 C씨를 다시 만나 오해를 풀었지만 웃사람들에게 잘못보고 됐을 것은 뻔하다. 또 한번은 청와대 만찬시간에 늦은 일이 있었다.
부산에서 예정시간에 맞춰 비행기를 탔는데 갑자기 눈이 내려 30분가량 늦었다. 대통령 늘 모시고 있던 사람들의 눈에 내가 좋게 보였을리 없었을 것이다.
-그럼 국제해체를 직접계획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나.
▲정부고위직에 있었던 J씨와 K씨로 생각하고 있다. 특히 K씨는 평소에도 나에 대해 좋은 말을 안했다.
-국제해체와 같은 어마어마한 일이 두사람만의 힘으로 가능했겠나.
▲물론 고위층을 모시고 있던 사람들과 얘기가 있었겠지만 해체주장은 그 두사람이 했을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이럴수가 있느냐는 생각에 울분을 새기며 시간을 보냈다. 지금도 방에는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못잔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건강을 유지하고 언젠가 새 정부가 들어서면 억울한 사정을 받아주지 않겠느냐는 기대속에 살아왔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 노태우 후보를 열심히 지지했다는데 사실인가.
▲우리가 볼때 노후보가 제일 낫다는 생각이 들었고 특히 「6.29」선언에 기대를 걸었다.그가 대통령이 되면 억울한 사정을 받아 줄 것을 기대해 내 자신과 전 국제간부 모두가 적극적으로 밀었다.
-국제그룹은 이미 임자가 바뀌었고 회사규모도 달라졌는데 다시 찾겠다는 움직임이 활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그 회사들을 인수한 측은 정당한 가격으로 사간 것이 아니다. 회사규모가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내게 빼앗아간 주식을 기본으로 증자를 했고 또 이것이 값이 오른 것이니 내가 갖고 있어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제를 다시 찾겠다는 구체적인 방법은.
▲개인적으로 1대 1로 가져간 회사는 당연히 돌려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몇백억원 짜리 회사를 몇십억원에 가져간 것도 있다. 그러나 동해투자 금융처럼 여러사람이 주식을 분산해 간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어쨌든 앞으로 국제의 재건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칠 생각이다. (양씨는 법정투쟁을 해서라도 국제를 다시 찾겠다고 다짐했다.) <한종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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