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구속영장 기각과 핵심 관계자 구속적부심 석방 등으로 이른바 ‘적폐 수사’의 동력을 잃고 주춤하던 검찰이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 수사로 MB(이명박 전 대통령)를 재조준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특활비 45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추가 기소한 데 이어 이 전 대통령까지 이 혐의로 조여 들어가는 모양새다.
당시 청와대 측근 김백준·김진모 #특활비 받은 혐의로 영장 청구 #댓글 수사는 김관진 석방으로 주춤 #다스는 내달 21일 공소시효 만료
검찰은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총무·민정라인에 있던 최측근 3인방이 수억원대의 국정원 특활비를 받은 혐의를 잡고 지난 12일부터 본격적인 강제 수사에 돌입했다. 이 전 대통령의 금고지기 역할을 했던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과 비서격인 김희중 전 제1부속실장,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 등이 그들이다. 검찰은 김 전 기획관과 김 전 비서관에 대해 14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성호·원세훈 전 국정원장도 소환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가 국정원으로부터 전달받은 자금의 이동 경로를 확인하며 수사를 점차 확대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은 지난해 9월 국정원의 전직 사이버외곽팀장에 대한 영장이 기각된 데 이어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까지 구속적부심을 통해 석방되자 주춤거렸다. 수사의 종착점이 이 전 대통령일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활로를 뚫지 못했다. 이에 ‘다스 120억원 비자금 의혹’에 대한 수사도 공소시효 만료일이 다음 달 21일로 다가와 심리적으로 쫓기는 입장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정원 특활비 수사는 검찰이 단숨에 이 전 대통령과 당시 청와대 관계자 전반을 핵심 수사선상에 올릴 수 있는 단초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은 김 전 기획관 등 3인방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국정원 특활비를 전달한 ‘문고리 3인방’과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실제 김 전 기획관은 청와대 안살림을 총괄하는 총무기획관이자 이 전 대통령의 ‘금고지기’로 통했다. 김 전 부속실장은 이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시절부터 서울시장에 오를 때까지 줄곧 개인 비서 역할을 맡으며 대소사를 챙겼다.
국정원 특활비 사건을 계기로 2010·2012년 두 차례에 걸쳐 수사가 진행됐음에도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던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과 장진수 전 주무관에 대한 입막음용 금품 제공 의혹도 재차 수사선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과 관련해 검찰은 장 전 주무관에게 5000만원을 전달하는 과정에 김진모 당시 민정2비서관이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장 전 주무관은 2012년 민간인 사찰 사건과 관련한 증거인멸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총리실 간부(류충렬 전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가 정부 발행 띠지로 묶인 신권 5000만원을 건네줬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그는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의 지시로 민간인 사찰 기록이 담겨 있는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파기했다고 진술한 직후라서 민정수석실에서 회유에 나선 것이란 의혹이 불거졌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이 돈의 출처를 확인하지 못했다.
◆“검찰이 직무유기”=2008년 BBK 특검을 맡았던 정호영 변호사는 14일 기자회견을 갖고 ‘특검 당시 다스 비자금 120억원에 대한 수사 내용을 은폐했다’는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정 변호사는 “특검 수사 종료 이후 다스의 120억원 횡령 건을 검찰에 정식으로 인계했고 이 전 대통령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120억원 의혹은 수사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를 입건해 수사할 권한이 없었다”며 검찰이 추가 수사에 나서지 않은 것이 오히려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특별한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정진우·박사라 기자 dino87@joongang.co.kr